장찬(掌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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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명부(內命婦) 종7품 궁관(宮官).

개설

내명부의 세자궁 소속 궁관이다. 내명부는 내관(內官)과 궁관으로 구성된 조직인데, 세자인 동궁을 위한 조직은 품계를 왕보다 낮추어서 마련하였다. 이 중 내관은 세자의 후궁이며 궁관은 여관(女官)으로 지칭되던 궁녀 조직이다. 장찬(掌饌)은 종7품 궁관으로 종9품 장식(掌食)장의(掌醫)를 통솔하였으며, 세자궁의 음식을 올리고 맛보는 직임을 담당하였다. 장식과 장의의 상관으로 이들을 이끌었다.

담당직무

장찬은 식찬(食饌)을 마련하여 올리는 직무를 담당하였다. 일상에서 세자와 세자빈 내외에게 식사를 올리고, 이를 먼저 맛보는 것이 장찬의 직무였다. 먼저 음식의 맛을 보는 것을 음식의 상태와 혹시라도 모를 독살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기미상궁의 역할을 세자궁에서는 장찬이 했던 것이다.

세자와 세자빈의 혼례 의식 중 동뢰의(同牢儀)에서 그 시작과 끝을 알렸으며, 동뢰의 음식[牢饌]을 준비하여 찬탁(饌卓)을 세자와 세자빈 앞에 진설하였다. 세자와 세자빈이 술을 나누어 마실 때에도 술상 앞으로 나와 술을 잔에 따라주었으며, 합근례의 근(巹)도 장찬이 준비하였다. 의식이 끝나면 찬탁을 거두는 일까지 장찬의 임무였다(『세종실록』 9년 4월 26일). 세자빈이 왕과 중전에게 인사드리는 빈조현의(嬪朝見儀)에서 장찬은 밤과 대추를 담은 조율쟁반, 생강·계피를 발라 말린 육포(腶脩)를 쟁반에 담아 세자빈에게 전하여 이를 왕과 중전이 만지게 하는 의식을 치르는 것을 돕는 역할을 했다(『세종실록』 9년 4월 26일). 별궁에서 치러지는 세자의 친영례(親迎禮)에서 찬탁을 설치하고 잔을 가져다가 술을 따르고, 탕을 내와서 먹도록 하였다(『영조실록』 3년 9월 29일).

변천

동궁의 내관 제도는 내명부 내관과 궁관 제도가 만들어진 후인 1430년(세종 12)에 마련되었다. 이때 종6품 1명으로 명칭도 사찬(司饌)으로 정해졌다(『세종실록』 12년 윤12월 16일).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장찬으로 관직명이 변경 되고, 관품도 종7품으로 변경되어 법제화되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한우근 외 역;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인문연구실 편, 『(역주)경국대전: 주석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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