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장조례(勳章條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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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4월 17일 칙령 제13호로 공포·실시한 대한제국기 훈장제도의 기반이 된 법령.

개설

대한제국에서는 1899년 7월 4일에 표훈원(表勳院)을 창설하고 이듬해 4월 17일 칙령 제13호로서 「훈장조례(勳章條例)」를 공포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나라에 공적(功績)과 훈로(勳勞)가 두드러진 사람에게 서훈(敍勳)하기 위하여 훈위(勳位)와 훈등(勳等)을 제정하고 그 계급에 따라 훈장을 수여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훈장조례」의 제정은 1900년(광무 4) 4월 17일에 반포한 칙령 제13호로 이루어졌다. 1876년 개항 이후 일본·청국을 비롯하여 미국·영국·프랑스 등 외국 여러 나라와 수교 및 통상 관계를 맺게 되면서 여러 외교적인 장치들이 필요하게 되었다. 또 1897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선포하고 고종이 황제 위에 등극함에 따라 일본이나 청국은 물론 황제제도를 취하고 있는 서구 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격을 얻게 되었다. 이러한 정치사회적인 정황 하에서 주로 외교적인 측면에서 외국과 동등하게 훈장을 수여하거나 받을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고자 훈장제도를 정하게 되었다.

내용

「훈장조례」는 총 6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제1장은 훈위와 훈등, 제2장은 훈장(勳章)·명목(名目)·서훈(叙勳), 제3장은 훈장패용(勳章佩用), 제4장은 훈장연금(勳章年金), 제5장은 외국훈장패용(外國勳章佩用), 제6장은 훈장연금 체탈(遞奪) 및 정지(停止) 등 관련 내용을 규정하였다.

제1장 훈위와 훈등에서 훈위와 훈등은 공적과 근로가 있는 자를 훈등을 대훈위(大勳位)·훈(勳)·공(功) 등 3종으로 구분하고, 훈과 공을 각각 1등에서 8등까지로 나누었다.

제2장은 훈장의 명목 및 서훈으로 금척대훈장(金尺大勳章)·서성대훈장(瑞星大勳章)·이화대훈장(李花大勳章)·태극장(太極章)·팔괘장(八卦章)·자응장(紫鷹章)을 제정하였다. 금척대훈장의 명목은 태조이성계가 꿈에서 신인을 만나 금척(金尺)을 받은 고사에서 비롯하였음을 밝혔으며, 이화는 나라의 문장[國文]에서 취하였다고 하였다. 태극은 나라의 표식[國標]에서 취하였다고 하였으며, 자응은 역시 태조의 무훈과 관련된 고사에서 비롯하였음을 밝혔다. 제8조에서 훈장은 본인만 패용하고 자손에게 세습되지 않으며 매해 1월과 7월에 정기적으로 수훈을 조사하여 훈장을 수여하지만 특별한 사안이 있을 경우에는 황제가 특지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제3장은 훈장패용에 관한 내용을, 제4장에서는 훈장연금에 관한 사항을 정리하였으며, 제5장에서는 외국훈장의 패용에 관한 사항을 수록하였다. 제6장은 훈장연금의 체탈 및 정지의 경우와 방법을 정하여 명예를 더럽히거나 중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훈장연금을 거두도록 하였다.

변천

훈장조례는 1900년 4월 17일에 칙령 제13호로 반포되어 금척대훈장과 이화대훈장· 태극장·자응장을 제정하였으며, 1901년 4월 16일 칙령 제10호로 팔괘장을 태극장과 같은 격으로 추가하는 내용으로 개정하였다. 1902년에는 서성대훈장을 추가하였으며 1907년 3월 30일 칙령 제20호로 내외명부에 수여하는 서봉장을 제정하도록 개정하였다.

참고문헌

  • 『대한제국 관보(大韓帝國 官報)』
  • 『대한법규유찬(大韓法規類纂)』
  • 이강칠,『대한제국시대 훈장제도』, 백산문화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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