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군정(統軍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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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평안도 의주의 객관으로 사용된 누각.

개설

조선시대 명과 청으로 사행을 떠나는 일행이나, 의주를 방문한 국왕과 문무 관원들이 압록강 인근의 풍광을 살피기 위해 방문했던 의주부 소속 누각이다.

위치 및 용도

통군정(統軍亭)은 평안도 의주에 위치한 누각의 하나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동쪽으로 수구(水口)와, 남쪽으로 위원(威遠) 고성(古城)과 연접한다고 기록되었다[『세종실록』 지리지 평안도 의주목]. 통군정은 대중국 사행 경로 중 한 곳이면서 의주의 객관으로 사용되던 곳이기도 하다.

변천 및 현황

통군정이 언제 설치되었는지 정확하지는 않으나 990년(고려 성종 9)경에 있었다는 기록을 통해 그 이전부터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조에 들어와 1478년(성종 9)에 목사(牧使)한천손(韓千孫)과 김철손(金哲孫) 등이 증수하고 임사홍이 기문을 작성하였다.

임진왜란 때 통군정은 군사적으로도 활용되었다. 명나라에서 파견한 장군 낙상지가 통군정의 위에 깃발을 꽂게 하고서 강 반대편의 군마(軍馬)들과 신호하는 데 이용하였다(『선조실록』 25년 10월 13일). 1606년(선조 39)에는 조선에 파견된 사신 중 상사(上使)가 통군정이라는 명칭에 대해 이전 시기에는 강 건너에 오랑캐가 있었기 때문에 통군정이라고 하였으나 이는 옳지 못하다고 하여 공진정(控津亭)으로 이름하고 액자를 걸려고 하였으나 끝내 성사되지 못하였다(『선조실록』 39년 8월 6일).

1713년(숙종 39)에 부윤홍처후의 주도로 개건되었고, 1823년(순조 23)에 부윤이덕현이 다시 개건하였다. 대한제국 때인 1909년(순종 2) 1월에는 순종이 서순행을 하면서 통군정을 순시한 바 있다(『순종실록』 2년 1월 29일). 현재는 북한의 보물급문화재 11호로 지정되어 있다.

형태

통군정은 정면과 측면의 칸수가 같아 모두 4칸씩이며, 사방이 개방되어 있는 공간에 중앙으로 T자형의 마루를 설치한 것이 독특한 점이다. 구조는 7량이며 흘림기둥을 세우고 꽃가지형의 2익공식 공포를 얹고 화반의 형식은 꽃무늬로 하였다. 천장은 건축물의 내부에서 서까래 바닥면을 보이게 한 연등천장이다.

관련사건 및 일화

조선시대에는 압록강 가에 군인을 주둔시키고 막사를 지어 지키도록 하였는데, 통군정에서 횃불을 올리면 막사의 군인들이 일제히 횃불을 올려 응답하는 것이 전례였다. 이 광경은 조선조 문인들 사이에서 의주부의 장관(壯觀)으로 꼽혔다고 한다.

참고문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임하필기(林下筆記)』
  • 『의주부지(義州府志)』
  • 『서순행일기(西巡幸日記)』
  • 이왕무, 「대한제국기 순종의 서순행 연구-『서순행일기』를 중심으로- 」, 『동북아역사논총』 3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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