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녕옹주(淑寧翁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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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649년(인조 27)~1668년(현종 9) = 20세]. 조선의 제 17대 임금인 효종(孝宗)의 딸로 옹주.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어머니는 이응헌(李應憲)의 딸인 이안빈(李安嬪)이다. 부마는 반남 박씨(潘南朴氏)금평위(錦平尉)박필성(朴弼成)이다.

출생과 혼인생활

1649년(인조 27) 숙녕옹주(淑寧翁主)는 효종과 이안빈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14세가 되던 1662년(현종 3) 현종(顯宗)은 숙녕옹주의 부마를 유학(幼學)박태장(朴泰長)의 아들 박필성(朴弼成)으로 결정하였다.(『현종실록』 3년 4월 10일) 이에 얼마 후 숙녕옹주는 박필성과 결혼을 하였고, 부마 박필성은 금평위에 봉해졌다.(『현종실록』 3년 8월 4일)

1668년(현종 9) 궁중에 천연두가 유행하였는데, 이때 숙녕옹주도 천연두에 걸리면서 2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현종실록』 9년 5월 20일) 현종은 숙녕옹주의 죽음을 슬퍼하며 조시(朝市)를 정지하였고, 숙녕옹주의 상(喪)은 편전(便殿)에서 거애하는 전례를 따르게 하였다.(『현종실록』 9년 5월 20일),(『현종실록』 9년 5월 20일) 그리고 이듬해인 1669년(현종 10) 숙녕옹주의 녹봉을 삼년 동안 지급하도록 지시하였다.(『현종실록』 10년 1월 7일)

묘소 및 후손

숙녕옹주의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송릉리에 있다.

숙녕옹주는 부마 박필성과의 사이에 1녀를 두었으며, 이수철(李秀喆)의 처가 되었다. 숙녕옹주의 어머니인 이안빈은 숙녕옹주보다 더 오래 살았는데, 숙종(肅宗) 때 그 후사를 이수철의 집안으로 결정하였다. 당시 이안빈은 사위이자 숙녕옹주의 부마인 박필성의 집안에 후사를 의탁하고 싶었으나, 박필성의 집안이 대종(大宗 : 씨족 등의 시조로부터 맏아들로 이어져 내려오는 적장계(嫡長系))이라 형세가 편치 않다고 판단하여 숙녕옹주의 외손으로 후사를 결정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수철 집안의 형편이 많이 어려워지면서 제사를 폐할 지경에 이르렀으므로, >정조(正祖) 대에 이르러 매년 제수로 쓸 쌀과 돈을 지급하는 한편 집을 사서 주도록 하였다.(『정조실록』 20년 8월 9일)

참고문헌

  • 『효종실록(孝宗實錄)』
  • 『현종실록(顯宗實錄)』
  • 『현종개수실록(顯宗改修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記略)』
  • 『서계집(西溪集)』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지두환, 『효종대왕과 친인척』, 역사문화,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