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朴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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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433년(세종 15)~1491년(성종 22) = 59세]. 조선 전기 세조~성종 때 활동한 문신. 행직(行職)은 사간원(司諫院)대사간(大司諫)이다. 자는 자첨(子瞻)이고, 호는 존성재(存誠齋)이며,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증조부는 찬성사(贊成事)박강생(朴剛生)이고, 조부는 교서관(校書館)정자(正字)박절문(朴切問)이다. 아버지는 밀산군(密山君)박중손(朴仲孫)이며, 어머니 남평문씨(南平文氏)는 공조 정랑(正郞)문승조(文承祚)의 딸이다. 형은 박전(朴栴)이고, 동생은 좌찬성(左贊成)박건(朴楗)이다. 부인 진산강씨(晉山姜氏)는 돈녕부(敦寧府)지사(知事)강석덕(姜碩德)의 딸이다.

세조~성종 시대 활동

1451년(문종 1) 사마시(司馬試)에 생원(生員)으로 합격하였다. 음보(蔭補)로 직장(直長)에 임명되어 재직하던 중, 1458년(세조 4) 알성시(謁聖試)문과(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였다. 1459년(세조 5) 2월 사간원(司諫院)정언(正言)이 되고, 그 해 8월 사간원 좌정언(左正言)이 되었다. 그 뒤 사섬시(司贍寺)부정(副正)·군자감(軍資監)정(正)·이천부사(利川府使)·광주목사(光州牧使)·선농(先農) 전사관(典祀官) 등을 역임하고, 1489년(성종 20) 5월 통정대부(通政大夫) 좌부승지(左副承旨)가 되었으며, 이어서 좌승지·예조 참의(參議)·대사간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1491년(성종 22) 세상을 떠나니 향년 59세이다. 『세조실록(世祖實錄)』과 『여지승람(輿地勝覽)』 편찬에 참여하였고, 시문(詩文)이 『동문선(東文選)』에 실려 전한다.

시호와 묘소

시호는 대민(戴敏)이다. 묘소는 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주교동 두응촌에 있다.

참고문헌

  • 『단종실록(端宗實錄)』
  • 『세조실록(世祖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