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수도(赤道宿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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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수(宿) 각 거성(距星) 사이의 적도경도(赤道經度) 간격.

개설 및 내용

적도수도(赤道宿度)는 적도를 28개의 별자리로 나누었을 때 각 별자리가 적도 상에서 차지하는 도수를 의미한다. 즉 28수 간의 적도경도 간격으로, 한 별자리의 가장 서쪽 끝에 있는 별인 수거성(宿距星)부터 다음 별자리의 수거성까지의 각도를 동쪽으로 측정하여 얻는다. 세차운동(歲差運動)으로 인하여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적도수도값이 서서히 변화하므로 세차값을 고려하여 구하고자 하는 해의 수도값을 계산한다. 『수시력』에서 관측에 의해 정한 28수의 적도수도값은 표 1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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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한대(漢代)부터 원대(元代)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에 측정한 28수의 성도를 조사해보면 이들 사이에 조금씩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한(漢)나라에서 당(唐)나라 초기에 이르기까지는 각 28수 사이의 도수가 새로이 변한 것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당의 개원(開元)에 이르러 일행(一行)이 28수의 거리를 실제로 관측한 후에야 비로소 필(畢), 자(觜), 삼(參), 귀(鬼) 4수에 1도의 증감이 있음이 알려졌다. 그러나 일행의 값들은 그 후 송(宋)의 황우(皇祐) 때에 측정한 결과와 이미 14수가 달랐고 황우 이후 매번 실측한 값들도 모두 조금씩 변동이 있었다. 특히 한대와 원대에 측정한 자와 삼의 값은 그 위치가 서로 역위된 사실이 나타났다. 즉 한대는 자 2도, 삼 9도였으나, 당대에는 자 1도, 삼 10도였으며 원대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단지 자 5/100도, 삼 11과 10/100도였다. 이것은 자와 삼이 전후에 역위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명대(明代) 이후 현재까지 자와 삼은 완전히 바뀌어 삼이 앞에, 자가 뒤에 위치한다. 이러한 역위 현상은 세차의 영향 때문으로 시대에 따라 관측한 28수의 성도값들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데 한나라부터 28수의 거성은 두세 개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별 변화가 없었다. 후대에 기록된 『명사』「역지」와 『보천가』 소재의 28수 거성 사이에는 규(奎), 묘(昴), 삼 3수를 제외하고는 완전히 일치함을 보인다. B.C. 104년(한 태초 1)부터 1281년(원 지원 18)까지 28수 적도수도의 변화값은 표 2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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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유경로·이은성·현정준 역주, 『세종장헌대왕실록』 「칠정산내편」,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3.
  • 이은희, 『칠정산내편의 연구』, 한국학술정보, 2007.
  • 中國天文學史整理硏究小組編著, 『中國天文學史』科學出版社, 1987.
  • 陳遵嬀, 『中國天文學史』 5冊, 明文書局, 1988.
  • 叶叔華 主編, 『簡明天文學詞典』, 上海辭書出版社,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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