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옹주(貞惠翁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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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424년(세종 6) = ?]. 조선의 제3대 임금인 태종의 딸로 옹주.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어머니는 성균관(成均館) 악정(樂正)안동 권씨(安東權氏)권홍(權弘)의 딸인 권의빈(權懿嬪)이다. 부마는 운봉 박씨(雲峰朴氏)박종우(朴從愚)이다.

혼인과 사망

태종이 후궁 제도를 법제화하여 맞아들인 첫 번째 후궁 권의빈에게서 태어난 정혜옹주(貞惠翁主)는 1419년(세종 1) 찬성(贊成)박신(朴信)의 아들 박종우(朴從愚)와 결혼하였다.(『태종실록』 2년 3월 7일),(『세종실록』 1년 1월 22일) 결혼 후 부마 박종우는 운성군(雲城君)이 되었고, 옹주는 정혜옹주에 책봉되었다.(『세종실록』 1년 1월 24일)

정혜옹주는 결혼 5년 만인 1424년(세종 6) 10월 6일에 세상을 떠났는데, 세종은 육선(肉膳)을 들지 않고, 조회와 저자를 사흘 동안 정지시켰다. 또 부의로 쌀·콩 1백 석과 종이 1백 권을 내리고, 관(官)에서 장례를 치러 주었다.(『세종실록』 6년 10월 6일) 그리고 세종은 정혜옹주의 빈소에 사제(賜祭)를 하였는데, 그 제문에 “너의 성품이 곧고 아름다우며, 자질은 현숙하였다. 궁중에서 양육할 때부터 인자하고 효성스러운 이름이 나타났고, 결혼한 뒤에도 엄숙하고 화목한 것이 더욱 나타나 마침내 규문(閨門) 안에 화목을 가져오게 하여, 척리(戚里)의 모범이 되었다. 그러므로 남매간의 은정을 두텁게 하여, 작명(爵命)의 은총을 내린 것이다.”라며, 정혜옹주에 성품을 칭찬하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을 슬퍼하였다.(『세종실록』 6년 10월 14일)

묘소와 후손

정혜옹주의 묘소는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반정리 산 55번지에 있으며, 부마 박종우의 사이에 자녀는 없었다.

참고문헌

  • 『태종실록(太宗實錄)』
  • 『세종실록(世宗實錄)』
  •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記略)』
  • 지두환, 『태종대왕과 친인척』, 역사문화,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