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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1:58 기준 최신판



조선시대 경상도 지역의 역도(驛道) 중 하나인 안기도에 속한 역으로, 오늘날의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운산리에 해당함.

개설

조선시대 세조대에 역제(驛制)를 41역도-543속역 체제로 개편할 때, 운산역(雲山驛)은 안기도(安奇道)를 구성하는 역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경상도 안동부(安東府)에 위치하였으며, 갑오개혁 때까지 존속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조선초 전국적인 역도-속역 체계가 마련되었는데, 이때에는 운산역의 명칭이 등장하지 않는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일직현에 위치한 역으로 운산역 대신 일직신역(一直新驛)이 나오는데, 일직신역이 세조대에 운산역으로 개명된 것으로 보인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안동의 안기역‧옹천역(瓮泉驛)‧우곡역(牛谷驛), 임하의 금소역(琴召驛), 의성의 청로역(靑路驛)‧철파역(鐵破驛), 영해의 병곡역(柄谷驛)‧석보신역(石保新驛), 영덕의 남역(南驛)‧주등역(酒登驛), 예안의 예안신역(禮安新驛)‧용안역(龍安驛), 청송의 문거역(文居驛)‧화목역(和睦驛), 진보의 진보신역(眞寶新驛) 등이 안기도에 속한 것으로 기재돼 있다.

조직 및 역할

역참에는 역역(驛役)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 역리(驛吏)와 역노비(驛奴婢) 등을 포함한 다양한 역민(驛民)이 편성되어 있었으며, 역의 재정에 충당하기 위해 역위전(驛位田) 또는 마전(馬田)이 지급되었다. 조선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운산역에는 역리 7명, 역노 79명, 역비 26명과, 대마(大馬) 1필, 중마(中馬) 2필, 복마(卜馬) 9필 등 총 12필의 역마가 배속되어 있었다. 찰방역(察訪驛)은 안동(安東)의 안기역(安奇驛)이다.

변천

세조 연간인 1460년(세조 3)에는 안기도‧장수도‧황산도의 일부 속역을 송라도(松羅道)로 편성할 때 일직신역은 송라도에 속하게 되었다.

뒤이어 1462년(세조 8)에는 각 도의 역참을 파하고 역로를 정비하여 찰방(察訪)역승(驛丞)을 둘 때, 일직신역 대신 운산역이라는 명칭이 등장하는데, 창락역(昌樂驛)‧죽동역(竹洞驛)‧창보역(昌保驛)평은역(平恩驛)‧도심역(道深驛)‧선안역(宣安驛)안교역(安郊驛)‧유동역(幽洞驛)‧안기역‧옹천역‧송제역(松蹄驛)‧금소역‧통명역(通明驛)‧철파역‧청로역 등과 함께 창락도(昌樂道)에 소속되었다(『세조실록』 8년 8월 5일). 이후 조선전기의 역참 제도가 완비된 『경국대전(經國大典)』 체제에서는 다시 안기도에 속하였다.

운산역의 위치는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일직고현(一直古縣)의 남쪽, 『여지도서』에는 안동부 관아 남쪽 33리 지점으로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의 행정 구역으로는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운산리 거리구터 마을에 해당한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대동지지(大東地志)』
  • 조병로, 『한국근세 역제사연구』, 국학자료원, 2005.
  • 오일순, 「고려시대 역제의 변동과 잡색역」, 연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0.
  • 정요근, 「고려전기 역제의 정비와 22역도」, 『한국사론』45, 2001.
  • 정요근, 「高麗·朝鮮初의 驛路網과 驛制 硏究」,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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