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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1:45 기준 최신판



조선 초 궁궐 내의 정원을 관리하고 과채(果菜)·화초(花草)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서.

개설

동산색은 조선 건국 직후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되며, 1394년(태조 3)에 상림원(上林園)으로 개칭되었다. 궁궐 내 정원을 관리하고, 궐내 정원에서 수확한 과일 등을 대전(大殿) 등에 올리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동산색의 설치 시기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1392년 조선 건국 직후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동산색은 궁궐 내 정원의 관리를 비롯해 궁궐에서 사용하는 과일이나 화초 등의 관리를 위해 설치되었다.

조직 및 역할

조직에 대해서 현재로서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초의 기구인 관마색(官馬色)(『태종실록』 1년 2월 30일) 기록이나 가례색(嘉禮色)(『태종실록』 2년 1월 17일) 기록 등을 통해 별도의 겸임직인 제조(提調)를 두지 않았을까 추정할 뿐이다. 또한 동산색의 임무가 궁궐 내의 정원 관리인 것으로 보아 주로 제조의 지휘 아래 내시들이 임무를 담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변천

동산색은 1394년 7월 11일에 상림원으로 개칭되었으며, 상림원은 이후 장원서(掌苑署)로 바뀌어 『경국대전』에 규정되었다. 한편 폐지 이후 내시들이 담당하던 직임의 하나가 되어 궁궐 후원에서 재배하는 과일을 따서 올리기도 하였다(『중종실록』 34년 5월 20일). 조선후기에는 장원서 소속의 별제(別提)가 동산색의 임무를 맡아서 생율(生栗)의 관리나 청포도의 진상, 중양절(重陽節)에 국화의 진상 등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경국대전(經國大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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