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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0:58 기준 최신판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각종 재주 및 익살, 풍악, 노래 등을 하던 광대·재인(才人).

개설

일종의 광대라 할 수 있는 우인(優人)은 고대로부터 존재했으나 전문 직종으로 자리 잡게 된 시기는 고려시대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조선시대에 들어와 천인(賤人) 신분의 특수 예인(藝人) 집단인 광대·재인 등을 다르게 부르는 용어로 우인이 사용되었다.

담당 직무

조선시대의 연희(演戱) 문화는 대체로 기녀(妓女), 악공(樂工), 사당(社堂), 무당(巫堂)을 비롯하여 우인·창우(倡優)·광대·재인·화랑(花郎) 등의 배우에 의해 유지되었는데, 이들 가운데 배우가 그 주류를 이루었다.

조선시대 우인들은 일정한 곳에 머물며 농사를 짓고 사는 게 아니라 떠돌이 생활을 하였다. 이들은 주로 마을의 도당(都堂)굿이나 별신(別神)굿에 동원되거나 장시(場市)를 찾아다니며 각종 기예(技藝) 및 풍악, 노래 등의 공연을 하며 그 대가로 식량을 구걸하여 먹고살았다(『성종실록』 12년 12월 17일).

한편 이들은 궁중에서 벌어지는 나희(儺戱)에 출연하여 여러 물품을 하사받기도 하였으며(『중종실록』 18년 12월 28일), 과거 시험 장원급제자가 거리를 돌며 시험관, 선배, 친척 등을 찾아보는 유가(遊街) 행사를 할 때 여기에 동원되어 풍악을 울리고 가무를 하기도 하였다(『성종실록』 10년 1월 24일).

참고문헌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 이두현, 『한국 무속과 연희』, 서울대학교출판부, 1996.
  • 장한기, 『한국 연극사』, 동국대학교출판부,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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