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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0:55 기준 최신판



국가 의례를 관장하던 통례원(通禮院) 소속의 종3품 관직.

개설

1466년(세조 12) 1월 15일에 처음 설치된 관직이다. 당시까지 국가 의례를 담당하던 통례문(通禮門)을 통례원으로 개칭하면서, 종3품의 지사(知事)를 고쳐 상례(相禮)라 하였다. 이것이 이후 그대로 『경국대전』에 반영되었으며 정원은 1명이었다.

상례는 대관(大官)으로 인식되었으며, 음서(蔭敍)의 혜택이 미쳤던 관직의 하나이다(『성종실록』 25년 11월 1일). 한편 체아직(遞兒職)을 받은 6품 이상의 대부분 관원이 900일의 임기를 마쳐야 다른 관직으로 옮길 수 있었으나 상례는 이에 해당되지 않았다.

담당 직무

상례는 같은 통례원 소속의 봉례와 함께 각종 국가 의례 시 왕세자를 인도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즉, 1604년(선조 37) 10월의 존호를 올리는 의식을 비롯해 1645년(인조 23)에 봉림대군을 왕세자를 책봉할 때, 1706년(숙종 44)에 인정전에서 진연(進宴)할 때 상례는 왕세자를 인도하여 행사장으로 출입하였다. 특히 인조대에는 봉례가 대군의 출입을 인도하도록 바뀌면서 상례가 전적으로 왕세자의 인도를 주관하였다. 간혹 행사의 순서에 맞지 않게 왕세자를 먼저 인도하여 행사장 밖으로 나아가게 해서 처벌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상례는 국장도감이 설치되면 대치사관(代致詞官)으로 활동하거나, 왕 행차 시 통례가 참석하지 못할 경우 그를 대신해서 수행한 적도 있었다. 행사의 비중에 따라 행사 시 임시로 상의원(尙衣院) 정(正)을 상례로 차출하는 예도 있었다. 이 밖에도 상례는 각 사의 낭관급 관원들이 왕을 정기적으로 인견하는 윤대(輪對)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조선후기에는 다른 관원의 겸직으로 가상례(假相禮) 혹은 섭상례(攝相禮)로 임명하기도 하였으며, 이들은 주로 왕의 인도를 주관하였다.

변천

1895년(고종 32) 통례원이 장례원(掌禮院)으로 개칭될 때 상례는 장례(掌禮)로 바뀌었다. 1897년에 다시 장례를 고쳐 상례로 하였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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