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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0:28 기준 최신판



서책 인출에 사용되는 종이.

개설

종이의 명칭은 크게 원료와 용도에 따라 구분된다. 원료의 경우 닥나무로 만든 저지(楮紙), 대나무로 만든 죽지(竹紙), 볏짚으로 만든 고정지(藁精紙), 물이끼로 만든 태지(苔紙) 등으로 불린다. 용도의 경우 서책 인출에 사용되는 책지(冊紙), 과거 시험지로 사용되는 시지(試紙), 계목(啓目)에 사용되는 계목지, 자문(咨文)에 사용되는 자문지 등으로 명명된다. 이외에도 종이의 색상·산지·가공방법 등에 따라 부르는 명칭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책지는 종이의 용도에 따른 명칭으로, ‘서책 인출’의 용도로 사용된 종이를 지칭한다.

조선시대에는 시기에 따라 다양한 원료로 책지를 만들었다. 이것은 중국·일본 등으로부터 들여온 제지술과 우수한 원료를 수입함에 따른 영향이었으며, 또한 서책 인출이 늘어남에 따라 닥나무 원료의 부족으로 인해 대체 원료가 개발되었기 때문이었다.

연원 및 변천

조선초기에는 전통적인 목판 인쇄와 함께 새로운 활자 인쇄술인 금속활자의 주조로 서책의 인출이 크게 늘어났다. 또한 호불 성향의 왕들이 불경이나 대장경에 대한 관심이 많아 불서의 인출이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특히 세종 연간에는 서책의 인출이 많아지자 전국 각 지역에서의 정기적인 공납분 책지만으로는 부족한 상황이었다. 부족한 책지를 보충하기 위해 1423년(세종 5)에는 주자소에서 서책의 인출용지를 충청도 400권, 경상도 900권, 전라도 700권 등 총 2,000권을 도내 창고의 미두(米豆)를 백저(白楮)로 바꾸어 제조·상납하라고 명하였다(『세종실록』 5년 9월 15일)

1434년(세종 16)에도『자치통감』을 인출하기 위해 조지소 50,000권, 경상도 105,000권, 전라도 78,000권, 충청도 33,500권, 강원도 33,500권 등 총 30만 권을 국고의 쌀로 닥을 바꾸어 제조·납부하도록 하는 등 정기적인 책지의 공납 외에 별도의 책지를 요구하였다.

이후 1457년(세조 3)에는 대장경을 50건 인출할 계획으로 전국 각도에 공납할 책지의 수량을 배정하기도 하였다. 중앙에서의 비공식적 책지 요구 지역은 경상·전라·충청 삼도에서 강원도 및 황해도까지 확장되어 전국적으로 이루어졌다. 이처럼 조선조에 들어와 서책의 인출이 급증하자 닥나무만을 이용한 종래의 조지법으로는 책지의 수요를 충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태종조에는 중국지[華紙]의 전습을 위해 1412년(태종 12) 정월에 중국지를 잘 만드는 요동의 숙주(肅州) 사람 신득재(申得財)를 불러 조지법을 전습하게 하였고(『태종실록』 12년 1월 17일), 7월에는 그가 만든 책지로 『십칠사』를 인쇄하였다(『태종실록』 12년 7월 9일). 또 세종조에는 닥나무의 사용을 줄이면서도 책지의 생산을 증가시키고자 각종 초절목피(草節木皮)와 닥나무를 적당히 혼합하여 잡초지(雜草紙)를 만들도록 하였고, 세조조에는 잡초지의 사용을 국가적인 차원에서 장려하기도 하였다.

세종 때에는 일본으로부터 왜저(倭楮)를 수입하여 책지를 제조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닥나무만으로는 책지의 소비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중국·일본 등의 원료와 기술을 받아들이기도 하였고, 닥나무 이외의 원료를 혼합하여 하품의 종이를 다량 생산하기도 하였다.

형태

1424년(세종 6) 조지서에서는 죽엽(竹葉)·송엽(松葉)·고절(藁節)·포절(蒲節) 등을 원료로 4가지 색깔의 책지를 만들었고, 이외의 다양한 원료로 고정지(藁精紙)·유엽지(柳葉紙)·유목지(柳木紙)·의이지(薏苡紙)·마골지(麻骨紙)·순왜지(純倭紙) 등의 책지를 만들었다. 즉 볏짚·버드나무·삼대·율무 등의 원료를 닥나무와 혼합한 종이였으나, 성현(成俔)의 『용재총화』에 의하면 성현이 살았던 1400년대 후반에는 대부분 사라지고 고정지와 유목지만이 명맥을 유지하였다고 한다.

조선후기 왕실과 중앙 관아에서 제작하는 책지에는 대부분 초주지(草注紙)저주지(楮注紙)가 사용되었다. 초주지는 진상·봉안(奉安) 등의 용도로 사용되어 첩책지(貼冊紙)라 하였고, 저주지는 배포·내사 등의 용도로 사용되어 권책지(卷冊紙)라고 하였다.

참고문헌

  • 『용재총화(慵齋叢話)』
  • 『탁지준절(度支準折)』
  • 손계영, 「고문서에 사용된 종이 연구」, 『고문서연구』25, 2004.
  • 손계영, 「조선시대의 초주지와 저주지」, 『서지학보』29, 2005.
  • 오용섭, 「왜저(倭楮)의 전래와 초조(抄造)」, 『서지학연구』10, 1994.
  • 정선영, 「조선초기 책지에 관한 연구」, 『서지학연구』창간호,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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