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영(笠纓)"의 두 판 사이의 차이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XML 가져오기)
 
(XML 가져오기)
 
1번째 줄: 1번째 줄:
 +
  
 
+
{{의복|대표표제=입영|한글표제=입영|한자표제=笠纓|대역어=|상위어=입(笠)|하위어=|동의어=입영자(笠纓子)|관련어=|분야=생활·풍속/의생활/관모|유형=의복|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시대~대한제국|왕대=태조~순종|집필자=이민주|용도=|시기=|관련의례행사=|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05537|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ka_10301008_001 『중종실록』 3년 1월 8일], [http://sillok.history.go.kr/id/kka_11708012_003 『중종실록』 17년 8월 12일], [http://sillok.history.go.kr/id/kka_10301008_001 『중종실록』 3년 1월 8일]}}
{{의복|대표표제=입영|한글표제=입영|한자표제=笠纓|대역어=|상위어=입(笠)|하위어=|동의어=입영자(笠纓子)|관련어=|분야=생활·풍속/의생활/관모|유형=의복|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시대~대한제국|왕대=태조~순종|집필자=이민주|용도=|시기=|관련의례행사=|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05537|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ka_10301008_001 『중종실록』 3년 1월 8일],[http://sillok.history.go.kr/id/kka_11708012_003 『중종실록』 17년 8월 12일],[http://sillok.history.go.kr/id/kka_10301008_001 『중종실록』 3년 1월 8일]}}
 
  
 
갓을 머리 위에 고정하기 위해 턱 밑에 매는 끈.
 
갓을 머리 위에 고정하기 위해 턱 밑에 매는 끈.

2017년 12월 9일 (토) 20:49 기준 최신판



갓을 머리 위에 고정하기 위해 턱 밑에 매는 끈.

내용

입영(笠纓)은 원래 갓을 머리 위에 고정하기 위한 실용적인 용도로 쓰였으나, 점차 장식적 효과를 중시하게 되어 마류(瑪瑠)·산호(珊瑚)·마노(瑪瑙)·청금석(靑金石) 등으로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다. 1508년(중종 3) 집의(執義)경세창(慶世昌)은 『나충록(蠃蟲錄)』을 살펴보니, 입영은 조선에만 있는 장식으로, 중국 사람이 그 턱 아래에 드리운 구슬을 기롱(欺弄)할뿐더러, 소용없는 물건을 비싼 값에 사오므로 폐지해야 한다고 청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예도(禮度)로서 이미 풍속을 이루었으므로 고칠 필요가 없다고 하였으나(『중종실록』 3년 1월 8일), 1522년(중종 17) 그 사치가 심해지자 학생과 서인·공상(工商) 등은 마노·호박(瑚珀)·산호·청금석으로 만든 입영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다(『중종실록』 17년 8월 12일).

용례

御朝講 嬴蟲錄 唯我朝有笠纓 笠纓非中朝制也 (중략) 上曰 禮度則已成風俗 天使曾見之 今不可改也 笠纓雖非華制 我朝不遵華制者頗多 不必盡改也(『중종실록』 3년 1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