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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9일 (토) 20:47 기준 최신판



홍색 명주로 만든 악공이 입는 단령.

개설

둥근 깃에 넓은 소매가 달린 붉은색 포(袍)이다. 홍색 명주로 만들기 때문에 홍주의라고 불렀다. 악공이 입었는데 악공복은 시대에 따라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연원 및 변천

15세기의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의하면 비란삼(緋鸞衫)을 악공복으로 착용하는 사례가 많았는데, 성종이 문소전(文昭殿)에 갈 때는 홍주의를 악공복으로 입었다. 그때 악공은 오관(烏冠)을 쓰고 모란꽃 흉배를 그린 홍주삼(紅紬衫)이나 녹주삼(綠紬衫)을 입었다. 문소전 악공의 겉옷[袍]은 악기와 위치에 따라 홍색과 녹색의 2가지로 구분했는데, 전후좌우에 다른 색이 놓이도록 교대로 홍주삼과 녹주삼을 입은 악공을 배열했다.

17세기의 『종묘의궤(宗廟儀軌)』에는 종묘제례에 연주하는 악공이 입는 겉옷[袍]으로 기록하고 있다. 개책(介幘), 백초대(白綃帶), 백포말(白布襪), 오피리(烏皮履)를 더하여 일습을 이루는데 흉배는 없어졌다. 보태평(保太平)과 정대업(定大業)을 추는 악공도 홍주의를 입었으며 보태평에는 진현관(進賢冠), 정대업에는 피변(皮弁)을 쓰며, 모두 상(裳)을 더했다.

19세기에는 악공복으로 홍주의, 개책, 남사대(藍絲帶), 백포말, 오피리를 갖추었다. 보태평과 정대업을 추는 악공은 복두(幞頭)를 쓰며, 다른 부속품은 악기를 연주하는 악공들의 복식과 동일했다.

형태

홍주삼은 둥근 깃에 넓은 소매가 달린 붉은색 포로서 홍색 명주[紅紬]로 만들었다. 15세기에는 가슴과 등에 모란꽃[牧丹]을 그려서 흉배처럼 달았다. 문무백관의 흉배는 직금이나 자수로 만들지만, 악공의 흉배는 수를 놓는 대신 그림을 그렸다. 17세기 이후로 흉배는 없어졌다.

용도

성종이 문소전에 갈 때 그곳에서 연주하는 악공이 입었다. 종묘대제를 거행할 때에도 악공이 입었는데, 인조대에는 악공의 홍주의를 마련하지 못하여 융복(戎服)을 입기도 하였다(『인조실록』 2년 2월 23일).

참고문헌

  • 『악학궤범(樂學軌範)』
  • 『종묘의궤(宗廟儀軌)』
  • 박소연, 「종묘제례악 악인복식연구」, 성신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