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곡현(歙谷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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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흡곡 지방을 다스리던 관아. 조선시대 강원도 북단 지역인 흡곡 지방을 다스리던 관청 및 행정기구.

개설

고려시대에 흡곡(歙谷)은 통천군(通川郡)의 임내(任內)였다. 1248년(고려 고종 35)에 현령(縣令)을 두어 주현(主縣)이 되었고, 조선에서도 현령을 둔 주현이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고구려에서 습비곡현(習比谷縣)이었고, 신라에서는 습계(習磎)로 고쳐 금양군(金壤郡)에 소속되었다.

고려 995년(고려 성종 14)에 10도제에서 삭방도(朔方道)의 흡곡현(歙谷縣)으로 편제되었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통천군의 임내로 편제되었고, 1248년(고려 고종 35)에 현령이 배치되면서 흡곡현으로 독자성을 가진 행정기구로 편제되었다.

조선 1413년(태종 13)에 8도제에서 강원도 흡곡현으로 편제되었다. 1455년(세조 1)에 군익도(軍翼道) 체제에 따라 고성도(高城道)를 설치하고, 고성은 중익으로, 흡곡은 좌익(左翼)으로 편제하였다(『세조실록』 1년 9월 11일). 1457년(세조 3)에 군익도 즉 3익(三翼) 체제를 폐지하고 거진(巨鎭)을 설치하는 진관(鎭管) 체제에서 간성진(杆城鎭)이 설치되어 고성·통천·흡곡 등을 관장하였다(『세조실록』 3년 10월 20일). 1596년(선조 29)에 흡곡현을 폐지하고, 당시 미산(嵋山) 18개 리(里)는 통천에 귀속시키고, 학포(鶴浦)의 30개 리는 안변에 귀속시켰다. 3년 후인 1598년(선조 31)에 흡곡현이 복읍(復邑)되었고, 1865년(고종 2)에 확장되었다(『고종실록』 2년 5월 26일).

조직 및 역할

조선초기에는 현령과 훈도(訓導)를 배치하였다. 현령은 문음(門蔭)으로 5, 6품 관직이었다. 아울러 향청(鄕廳)에는 좌수(座首) 1인과 별감(別監) 2인을 두었다. 조선후기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서 6방(六房) 관속으로 군관(軍官) 7인, 아전(衙前) 13인, 지인(知印) 7인을 두었다. 그리고 사령(使令) 10명, 관노(官奴) 18명, 관비(官婢) 10명을 두었다. 6방 관속은 객사(客舍), 아사(衙舍), 향청 등에 배속되어 업무를 분장하였다.

변천

1895년(고종 32)에 8도제를 폐지하고 23부제로 행정조직을 개편하면서 강원도는 춘천부와 강릉부로 편제되었다. 아울러 군현제가 폐지되고 각 고을은 군으로 단일화되었다. 이때 흡곡군은 강릉부 관할로 편제되었다. 이듬해 1896년(고종 33)에 23부제를 폐지하고 13도제로 행정조직이 개편되면서 강원도는 다시 복원되었고, 이때 흡곡군은 강원도에 귀속되었다. 1910년에는 칙령 제7호가 반포되어 통천군에 편입되었다(『순종실록』 3년 1월 29일).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강원도, 『강원도사』11, 강원도사 편찬위원회,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