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정전(徽定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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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에 있던 헌종의 첫 번째 비 효현왕후(孝顯王后)의 신주를 모신 혼전(魂殿).

개설

혼전은 산릉에서 장례를 치른 뒤 신주를 모시고 궁궐로 돌아와 종묘(宗廟)에 부묘(祔廟)할 때까지 신주를 봉안하는 곳이다. 효현왕후처럼 왕보다 먼저 승하한 왕후는 1년상인 기년상(期年喪)으로 치러져서 11개월에 연제(練祭)를 행하고 13개월에 상제(祥祭)를 행하며 15개월에 담제(禫祭)를 지냈다. 왕후의 신주는 배우자인 왕의 신주와 함께 종묘에 부묘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담제가 끝난 후에도 왕후의 신주는 혼전에 남아 있다가 왕이 승하하여 3년상을 마친 후 함께 부묘하였다.

휘정전은 헌종의 첫 번째 비 효현왕후의 혼전이다. 효현왕후는 영흥부원군(永興府院君) 김조근(金祖根)의 딸이다. 1843년(헌종 9) 효현왕후가 승하하자 혼전의 전각명을 ‘휘정(徽定)’으로 정하고(『헌종실록』 9년 9월 2일), 5개월 뒤 경릉(景陵)에 장례를 치렀다. 이후부터 1849년(헌종 15) 헌종이 승하하고 3년상을 치를 때까지 휘정전에 신주가 봉안되어 있었다.

내용 및 특징

1843년 8월 25일 효현왕후가 창덕궁 대조전(大造殿)에서 승하하자 창경궁 환경전(歡慶殿)에 빈전(殯殿)을 마련하였다. 5개월 뒤 12월에 경릉에 시신을 넣은 관인 재궁(梓宮)을 묻고 반우(返虞)하여 미리 마련한 혼전에 신주를 봉안하였다(『헌종실록』 9년 12월 2일). 이때 조성한 혼전명이 휘정전이다.

휘정전은 창경궁의 편전(便殿)인 문정전(文政殿)에 설치하였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경희궁 안에 있었다고 되어 있다. 혼전이 존재하는 동안 휘정전은 효현왕후를 가리키는 대명사로도 쓰였다.

휘정전에서 거행한 의식은 일반적으로 혼전에서 거행하는 것과 같은 절차를 밟았다. 반우한 날 초우제(初虞祭)를 시작으로 칠우제(七虞祭)까지 우제를 지낸 뒤 졸곡제(卒哭祭)를 거쳐 연제, 상제, 담제 등이었다.

1851년(철종 2) 8월 6일 휘정전에 봉안했던 효현왕후의 신주를 종묘로 옮겨 와서 헌종과 함께 부묘하였다. 따라서 휘정전은 효현왕후의 신주를 봉안하기 시작한 1843년 12월 2일부터 헌종의 3년상을 마치고 종묘에 부묘한 1851년 8월 6일까지 창경궁의 문정전에 설치되었다.

변천

휘정전이 있었던 창경궁의 문정전은 그 이전부터 왕이나 왕후의 혼전으로 사용되어 온 전각이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효현왕후국장도감의궤(孝顯王后國葬都監儀軌)』
  • 『효현왕후빈전혼전도감의궤(孝顯王后殯殿魂殿都監儀軌)』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정옥자 외, 『조선시대 문화사』(상), 일지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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