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빈김씨(徽嬪金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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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 = ?]. 조선 5대 임금인 문종(太祖)의 세자빈이자 폐세자빈(廢世子嬪). 문종의 세자시절 들인 첫 번째 세자빈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아버지는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총제(摠制)를 지낸 김오문(金五文)이며, 어머니는 정총(鄭摠)의 딸인 청주 정씨(淸州鄭氏)이다. 할아버지는 돈녕부(敦寧府) 판사(判事)를 지낸 김구덕(金九德)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상락군(上洛君)김묘(金昴)이다. 오라버니는 돈녕부 승(承)을 지낸 김중엄(金仲淹)이며 언니는 정자원(鄭自源)의 처이다. 고모는 태종(太宗)의 후궁이자 숙안옹주(淑安翁主)의 어머니인 김명빈(金明嬪)이다. 세자빈에 책봉된 지 2년 만에 폐출되었으며, 슬하에 자녀는 없다.

문종의 세자빈

김휘빈은(金徽嬪)은 오위도총부 총제를 지낸 아버지 김오문과 정총의 딸인 어머니 청주 정씨의 사이에서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427년(세종 9) 세종(世宗)은 당시 세자이던 문종의 빈(嬪)을 간택하였는데, 김오문의 딸인 김씨를 세자빈으로 삼아 휘빈(徽嬪)에 봉하였다.(『세종실록(世宗實錄)』 9년 4월 9일) 그리고 김휘빈의 어머니는 딸이 세자빈에 간택된 후 숙경택주(淑敬宅主)에 봉해졌다.(『세종실록』 9년 8월 18일)

김휘빈은 세자인 문종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김휘빈은 문종의 총애를 받기 위해 압승술(壓勝術)을 사용하다가 발각되었는데, 이는 시녀(侍女) 호초(胡椒)에게 배운 것이었다.(『세종실록』 11년 7월20일) 김휘빈이 호초에게 부인(婦人)이 남자에게 사랑을 받는 술법(術法)을 묻자 호초는 남자가 좋아하는 부인의 신을 베어다가 불에 태워서 가루로 만들어 술에 탄 후 남자에게 마시게 하면 사랑을 받게 된다고 하였다.(『세종실록』 11년 7월20일) 이에 김휘빈은 평소에 시기하던 효동(孝童)과 덕금(德金) 두 시녀의 신을 가지고 시험을 해보고자 하였으나 여의치 않았다. 그리하여 김휘빈은 호초에게 다시 또 다른 술법에 대해서 물었고, 호초는 두 뱀이 교접할 때 흘린 정기(精氣)를 수건으로 닦아서 차고 있으면 반드시 남자의 사랑을 받는다고 하였다. 그런데 본래 김휘빈의 비(婢)였던 세자궁의 시녀 순덕(順德)이 김휘빈의 약낭(藥囊) 속에 베어 넣은 가죽신의 껍질을 발견하고, 김휘빈의 어머니에게 이 일을 말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세종과 소헌왕후(昭憲王后)는 김휘빈에게 직접 사유를 묻자 김휘빈이 자초지종을 밝히며 자백을 하였다.(『세종실록』 11년 7월 20일)

결국 1429년(세종 11) 김휘빈은 세자빈이 된 지 두어 해도 못 되어 요망하고 사특할 뿐만 아니라, 투기를 부리는 등 국모로서의 자질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폐출되었고, 시녀 호초는 의금부에 갇혔다.(『세종실록』 11년 7월 18일) 이후 호초는 김휘빈에게 압승술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참형에 처해졌다.[『세종실록』세종 11년 7월 20일 11번째기사] 김휘빈에 대한 처벌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의 아버지인 김오문의 직첩(職牒)을 거두었으며, 오라버니인 돈녕부 승김중엄을 파면하였다. 또한 호초는 원주목사(原州牧使)이반(李蟠)과 그의 첩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었는데, 이 사건으로 호초의 아버지인 이반의 직첩 역시 거두었다.(『세종실록』 11년 7월 20일)

참고문헌

  • 『세종실록(世宗實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지두환, 『문종대왕과 친인척』, 역사문화, 2008.
  • 한희숙, 「조선 태조·세종 대 세자빈 폐출 사건의 의미」, 『한국인물사연구』14,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