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언해(訓民正音諺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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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으로 된 『훈민정음』에서 세종(世宗)의 서(序)과 예의(例義) 부분을 한글로 풀이한 책.

개설

『훈민정음언해(訓民正音諺解)』는 한문으로 된 『훈민정음』에서 세종이 지은 서문과 새 문자들을 소개한 예의 부분을 한글로 풀이하여 간행한 책이다. 이 책은 흔히 『훈민정음언해본(訓民正音諺解本)』 혹은 『월인석보본(月印釋譜本)』, 또는 『주해본(註解本)』이라고 부른다. 『월인석보본』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이 책이 『월인석보(月印釋譜)』 권1 첫머리에 실려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대개 15장으로 되어 있으며, 중세 한국어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문헌 자료이다.

이 책의 번역시기는 대략 세종 말년부터 1459년(세조 5) 사이로 보고 있다. 번역 방식은 한문으로 쓰인 훈민정음의 본문을 짧은 구절로 나누어 토(吐)를 달고, 한자 한 글자마다 동국정운(東國正韻)식 한자음을 표기했다. 글자의 밑에 2줄로 한문의 뜻풀이를 한 다음 그 구절 전체를 번역했다. 즉 『훈민정음』에 쓰인 한문을 읽은 뒤 그 한문의 각 글자 풀이를 읽고, 한글로 번역된 부분을 읽게 하여, 한문을 모르더라도 『훈민정음』을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있는 것이다.

서지 사항

판본은 몇 가지가 전하고 있으며 1459년(세조 5)에 간행된 『월인석보』 권두(卷頭)에 실려 『세종어제훈민정음(世宗御製訓民正音)』으로 합본된 『월인석보본』인 서강대학교 도서관 소장본과 박승빈(朴勝彬)이 가지고 있다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의 육당문고에 소장된 판본이다. 복각본으로는 1568년(선조 1) 목판에 다시 새겨 찍어낸 희방사본(喜方寺本)이다. 이 원간본과 복간본이 주로 활용되는 판본이다. 일본 궁내성과 일본인 학자가 가지고 있는 판본도 있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는 복각본인 희방사본을 소장하고 있다.

구성/내용

『훈민정음언해』 중 지금 남아 있는 언해본은 1459년(세조 5)에 간행한 『월인석보』 권1·2의 앞에 실린 것이다. 『월인석보』는 세종이 지은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과 수양대군(首陽大君 : 세조)이 어머니 소헌왕후(昭憲王后)의 명복을 빌기 위해 아버지 세종의 명을 받고 불교 서적을 한글로 번역한 『석보상절(釋譜詳節)』을 한데 엮은 책이다. 여기 실린 언해본은 목판으로 인쇄했으며, 반듯한 글꼴로 된 『훈민정음해례(訓民正音解例)』보다 부드러운 글꼴로 되어 있다.

『훈민정음언해』는 백성들이 한문을 몰라도 새로운 문자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國之語音이”로 먼저 한문을 제시한 뒤, “國은 나라이다. 之는 입겿(어조사)이다.”라는 식으로 한문의 각 글자에 대한 풀이를 하고 있다. 물론 각 글자에 대한 풀이로 제대로 된 해석을 할 수 없는 경우 한자로 된 단어를 통째로 풀이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한자에 대하여 풀이한 후 “나라의 말이”로 완성된 번역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각 한자 아래에는 작은 글자로 해당 한자의 소리를 적어놓고 있다.

한자어의 아래 작은 글자로 표기된 한글의 표기 방식을 동국정운식 표기라고 하는데, 중국에서 사용되는 실제 중국 발음과 유사하게 적기 위한 표기라든지, 초성ㆍ중성ㆍ종성이 모두 들어가야 하는 성음법을 지키고 있어, 실제 사용되는 현실음의 표기와 다른 것이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이러한 표기로 인해 고유어의 표기 방식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훈민정음언해』는 15세기의 한국어로 되어 있기 때문에 현대 한국어의 모습과는 여러 부분에서 다르다. ‘어리다(어리석다)’, ‘하다(많다)’와 같이 어휘의 측면뿐만 아니라,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홀소리 글자의 기본 글자 ‘ㆍ’와 여린히읗(된이응) ‘ㆆ’, 각자병서, 합용병서의 쓰임이 많다. 또 당시에 변별 자질로 활용되었던 성조 표기로 방점을 찍었던 것이나, 띄어쓰기가 없었다는 점 등은 현대 한국어와 중세 한국어를 비교하는 데 유용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훈민정음언해』에는 한문본에 없는 치음자(齒音字)에 관한 규정, 즉 한어(漢語)의 치음을 표기하는 한글의 치음자를, 치두음자(齒頭音字 :ᅎᅔᅏᄼᄽ) · 정치음자 ( 正齒音字 : ᅐᅕᅑᄾᄿ)로 따로 제자해서 사용하도록 한 규정이 첨가되어 있다. 이 규정은 1455년(단종 3)에 완성된 것으로 보이는 『사성통고(四聲通攷)』의 범례에도 들어 있다는 점에서 『훈민정음언해』는 최소한 1455년 이전에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훈민정음언해』에는 원본과는 다르게 내제(권두서)가 「세종어제훈민정음(世宗御製訓民正音)」이라고 되어 있고, ‘아설순치후(牙舌脣齒喉)는 중국음에 통용된다’고 하였으며, 글이 완결된 마지막장의 뒤쪽 맨 끝줄에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에서는 사잇소리 표기로 ‘ㄱ ㄷ ㅂ ㆆ ㅅ ㅿ’들의 낱자를 사용했는데, 여기서는 ‘ㄱ ㄷ ㅂ ㅸ ㆆ ㅅ’들의 낱자를 쓰고 있다. 그리고 연철표기를 썼다는 점에서도 처음 훈민정음이 만들어졌을 때와는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훈민정음』 원본과 더불어 우리 문자사에서 매우 귀한 것이다. 국어학ㆍ음성학ㆍ음운학 등의 연구 자료는 물론 조선 초기의 국어의 표기법 연구 및 한글 글자체 연구 등에도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

참고문헌

  • 김윤경, 『한국문자급어학사』, 동국문화사, 1954.
  • 박종국, 『훈민정음』, 정음사, 1976.
  • 박종국, 『한국어 발달사』, 세종학연구원, 1996.
  • 박종국, 『훈민정음 종합 연구』, 세종학연구원, 2007.
  • 김석득, 『우리말연구사』, 정음문화사, 1983.
  • 최현배, 『소리갈』, 정음사, 1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