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몽자회(訓蒙字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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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7년(중종 22)에 최세진(崔世珍)이 지은 어린이들을 위한 한자(漢字) 학습서.

개설

『훈몽자회(訓蒙字會)』는 1527년 최세진이 어린이들의 한자 학습을 위하여 지은 책이다. 초간본이 간행된 이래 여러 차례 중간되었다. 최세진은 당시 한자 학습에 사용된 『천자문(千字文)』과 『유합(類合)』의 내용이 경험세계와 직결되어 있지 않음을 비판하고, 새·짐승·풀·나무의 이름과 같은 실자(實字) 위주의 교육을 주장하며 이 책을 편찬하였다.

상·중·하 3권으로 되어 있으며, 각 권에 1,120자씩 총 3,360자가 수록되어 있다. 한자의 배열은 상권에 천문(天文) 이하 16문, 중권에 인류(人類) 이하 16문으로 주로 전실자(全實字)를 수록하였고, 하권에는 잡어(雜語)라 하여 반실반허자(半實半虛字)를 수록하였다. 한자의 수에서 『천자문』과 『유합』을 압도하고 그 내용도 새로웠다는 점에서 실용적 가치가 컸다.

서지 사항

총 3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일본 교토 에이산문고[叡山文庫], 도쿄대학[東京大學]에 소장되어 있으며,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는 <임진왜란(壬辰倭亂)> 이후의 간본인 목판본 2종을 소장하고 있다.

이 책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간행되었는데, 원간본으로 추정되는 1527년에 간행된 활자본인 을해자본(乙亥字本)은 일본 교토[京都]에서 멀지 않은 히에이산[比叡山]의 에이산문고에 간직되어 있다. 이 초간본이 나온 뒤 곧 개정판이 간행되었다. 이 개정판은 목판본으로 한자를 크게 1행에 네 자씩 배열하여 학습에 편하도록 하였다.

임진왜란 이전의 간본인 목판본으로는 간년 미상판인 국내 서재극 교수 소장본, 일본 도쿄대학 소장본, 손케이카쿠문고[尊經閣文庫] 소장본이 알려져 있다. 위의 원간본과 중간본들은 서로 내용에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원간본과 도쿄대학본은 1971년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에서, 손케이카쿠본은 1966∼1967년 한글학회에서 낸 『한글』지에 영인된 바 있다.

임진왜란 후에도 『훈몽자회』는 여러 차례 간행을 거듭하였다. 규장각에 있는 내사본(內賜本)은 임진왜란 후 고전중간사업의 일환으로 1613년(광해군 5)에 간행된 것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사실은 하권 끝 장(35장)의 뒷면 첫 행의 제3자와 제4자가 본래는 ‘미만(瀰漫)’인데, 이것이 ‘낙예(洛汭)’로 바뀌어 간행되기도 하였다는 점이다. 1913년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에서 간행된 것은 주시경(周時經)의 ‘재간례(再刊例)’가 붙어 있으며, 사실상 최후의 간본이었는데 이 책에는 ‘낙예(洛汭)’로 되어 있다.

구성/내용

『훈몽자회』의 저자 최세진은 중국어에 정통하여 중종(中宗) 대에 사대(事大)와 관련한 이문(吏文)을 담당하였다.(『중종실록』 37년 2월 10일) 능통한 중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최세진은 한자 학습에 사용된 『천자문』과 『유합』 등의 책이 실제 사물과 직결된 실자들을 충분히 다루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며 실자 위주의 이 책을 편찬했다. 상권에는 천문·지리·화품(花品)·초훼(草卉)·수목·과실·화곡(禾穀)·소채·금조(禽鳥)·수축(獸畜)·인개(鱗介)·곤충·신체·천륜(天倫)·유학(儒學)·서식(書式) 등으로, 중권에는 인류·궁택(宮宅)·관아(官衙)·기명(器皿)·식찬(食饌)·복식(服飾)·주선(舟船)·거여(車輿)·안구(鞍具)·군장(軍裝)·채색·포백(布帛)·금보(金寶)·음악·질병·상장(喪葬) 등으로, 하권에는 잡어(雜語) 등 모두 33개 물목(物目)으로 나누어 배열하였다. 이는 생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에 관한 글자였으므로, 국문 보급에도 공이 컸다. 한편 본문 한자를 국역(國譯)한 것은 고어(古語)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이 책의 상권 첫머리에는 「훈몽자회인(訓蒙字會引)」과 「범례」가 실려 있는데, 「범례」의 끝에 ‘언문자모(諺文字母)’라 하여, 그 당시의 한글 체계와 용법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붙어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훈몽자회』는 3,360개에 이르는 한자의 하나마다 ‘天 하텬/道尙左日月石旋’과 같이 첫째, 새김 둘째, 자음 셋째, 주석을 붙여놓았다. 첫째·둘째는 모든 한자에 다 있으나, 셋째가 붙은 것은 전체 한자의 7할 정도이다. 첫째와 같은 새김은 국어 역사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둘째의 자음표기도 우리나라 한자음 연구의 좋은 자료가 된다. 셋째의 내용을 보면 한자의 자체(字體)에 관한 것, 자음과 의미에 관한 것, 용례(用例)에 관한 것 등이 있다. 특히 중국 속어에 관한 설명이 적지 않게 들어 있다.

이 책에서는 정음을 ‘반절(反切)’이라 하고, ‘ㆆ’을 실제 소리에서 없애고, 정음의 낱자 이름을 정했으며, 그리고 받침은 ‘ㄱ·ㄴ·ㄷ·ㄹ·ㅁ·ㅂ·ㅅ·ㅇ’의 8자로 한정했다. 또 ‘초성종성통용팔자(初聲終聲通用八字)’로 ‘ㄱ(其役)·ㄴ(尼隱)·ㄷ(池◯末)·ㄹ(梨乙)·ㅁ(眉音)·ㅂ(非邑)·ㅅ(時○衣)·ㅇ(異凝)’을 들었고, ‘초성독용팔자(初聲獨用八字)’는 ‘ㅋ(◯箕)·ㅌ(治)·ㅍ(皮)·ㅈ(之)·ㅊ(齒)·ㅿ(而)·ㅇ(伊)·ㅎ(屎)’으로 규정하였다. 한자는 뜻과 관계없이 소리만 빌려서 해당 자모의 첫소리와 끝소리를 나타내도록 하였는데, 알맞는 한자음이 없는 경우에는 새김으로 읽도록 하였다. 예를 들어 시옷에 해당하는 한자 ○衣는 우리말 뜻인 ‘옷’으로 읽게 하였고, ◯末도 ‘귿(끝)’으로 읽게 하였다.

초성의 순서는 ‘초성종성통용팔자’와 ‘초성독용팔자’의 순서는 훈민정음에서 ‘아, 설, 순, 치, 후’로 해서 먼저 기본자, 가획자 순으로 벌였던 것과는 다르며, 이후 이 순서가 한글의 순서의 기본이 되었다.

중성은 ‘중성독용십일자(中聲獨用十一字)’는 ‘阿 ㅏ, 也 ㅑ, 於 ㅓ, 余 ㅕ, 吾 ㅗ, 要 ㅛ, 牛 ㅜ, 由 ㅠ, 應 ㅡ 不用終聲, 伊 ㅣ 只用中聲, 思 ㆍ 不用初聲’로 했는데, 이도 훈민정음과는 순서가 다르며, 이 순서는 이후 한글 모음의 순서의 기본이 되었다.

이것은 우리 문자사(文字史)의 중요한 기록인 바, 이 ‘언문자모’ 때문에 최세진은 한글 자모의 이름을 지은 사람으로 간주되기도 했고, 여덟 글자만 받침으로 쓸 수 있다는 규정을 만든 장본인이라고 비난을 받기도 하였지만, 음운론적으로 볼 때, 받침의 자리에서 중화가 되는 원리를 적용한다면, 형태소 표기가 아닌 소리 표기에서는 당연히 7종성이 되는데, 당시에는 ‘ㅅ’과 ‘ㄷ’이 종성으로 다르게 발음되었다면, 8종성이 된다. ‘초성종성통용팔자’에 대해서는 이름을 두 자씩 적음으로써 그들의 용법을 나타낸 것으로, 첫자는 초성의 발음, 끝자는 종성의 발음을 나타낸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으며, ‘초성독용팔자’에 대해서는 한 자씩만 적은 사실이 그 증거가 된다.

특히 책머리의 범례(凡例)는 국어학상 획기적인 자료로 ‘·’ 식의 이중모음 표기법을 창시한 것이라든지, 원래 훈민정음의 28자모(字母)에서 ‘ㆆ’자가 없어진 27자로 정리한 것 등이 특이하며, 이전까지의 ‘언문(諺文)’이라는 이름 외에 ‘반절(反切)’이라는 이름을 끈 것도 특이하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박종국, 『한국어 발달사』, 세종학연구원, 1996.
  • 방종현, 「훈몽자회고(訓蒙字會攷)」, 『동방학지』1 , 연세대학교, 1954.
  • 이기문, 「훈몽자회연구(訓蒙字會硏究)」, 『한국문화연구총서』5, 서울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 1971.
  • 최현배, 『고친 한글갈』, 정음사, 19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