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정전(孝正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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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에 있던 순조의 비 순원왕후(純元王后)의 신주를 모신 혼전(魂殿).

개설

혼전은 산릉에서 장례를 치른 뒤 신주를 모시고 궁궐로 돌아와 종묘(宗廟)에 부묘(祔廟)할 때까지 신주를 봉안하는 곳이다. 순원왕후처럼 왕보다 나중에 승하한 왕후는 장례를 치르는 시점이 승하한 지 5개월 만에 이루어지므로 혼전은 3년(27개월) 중 22개월 동안 존재하였다.

효정전(孝正殿)은 순조비 순원왕후의 혼전이다. 순원왕후는 영안부원군(永安府院君) 김조순(金祖淳)의 딸이다. 1857년(철종 8) 순원왕후가 승하하자 혼전의 전각명을 ‘효정(孝正)’으로 정하고(『철종실록』 8년 8월 10일), 5개월 뒤 인릉(仁陵)에 장례를 치렀다. 3년의 상제가 끝난 뒤 종묘의 순조 신실(神室)에 부묘할 때까지 효정전에 신주가 봉안되어 있었다.

내용 및 특징

1857년 8월 4일 순원왕후가 창덕궁 양심합(養心閤)에서 승하하자 창경궁 환경전(歡慶殿)에 빈전(殯殿)을 마련하였다. 5개월 뒤 12월에 순조의 능인 인릉에 시신을 넣은 관인 재궁(梓宮)을 묻고 반우(返虞)하여 미리 마련한 혼전에 신주를 봉안하였다(『철종실록』 8년 12월 18일). 이때 창경궁에 조성한 혼전명이 효정전이다.

효정전은 창경궁의 편전(便殿)인 문정전(文政殿)에 설치하였다(『철종실록』 8년 8월 5일).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창경궁 안에 있었다고 되어 있다. 혼전이 존재한 동안 효정전은 순원왕후를 가리키는 대명사로도 쓰였다.

효정전에서 거행한 의식은 일반적으로 혼전에서 거행하는 것과 같은 절차를 밟았다. 반우한 뒤 삼우제(三虞祭)를 시작으로 칠우제(七虞祭)까지 우제를 모두 지낸 뒤 졸곡제(卒哭祭)를 거쳐 연제(練祭), 상제(祥祭), 담제(禫祭)를 효정전에서 거행하였다. 초우제(初虞祭)와 재우제(再虞祭)는 산릉 길유궁(吉帷宮)에서 지냈다.

1859년(철종 10) 10월 6일 부묘 하루 전, 철종이 효정전에 나아가 고동가제(告動駕祭)를 행하고 이어서 종묘에 나아가 재숙(齋宿)하였다. 다음 날인 10월 7일 순원왕후의 신주를 종묘에 부묘하고 부묘대제(祔廟大祭)를 지냈다. 따라서 효정전은 순원왕후의 신주를 봉안하기 시작한 1857년 12월 18일부터 3년상을 마치고 종묘에 부묘한 1859년 10월 7일까지 창경궁의 문정전에 설치되었다.

변천

효정전이었던 창경궁의 문정전은 그 이전부터 왕이나 왕후의 혼전으로 사용되었던 전각이다.

참고문헌

  • 『순원왕후국장도감의궤(純元王后國葬都監儀軌)』
  • 『순원왕후빈전혼전도감의궤(純元王后殯殿魂殿都監儀軌)』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이현진, 「조선 왕실의 혼전」, 『조선시대 문화사』(상), 일지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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