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순공주(孝順公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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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522년(중종 17)~1538년(중종 33) = 17세]. 조선 제11대 왕인 중중(中宗)의 딸로 공주. 어머니는 중종의 계비(繼妃)로, 파산부원군(坡山府院君)윤지임(尹之任)의 딸인 문정왕후(文定王后)이다. 친동생은 제13대 왕인 명종(明宗)이며, 배다른 오빠로는 장경왕후(章敬王后)의 아들인 제12대 왕 인종(仁宗)이 있다. 능성 구씨(綾城具氏)구순(具淳)의 아들인 구사안(具思顔)과 결혼하였다.

출생 및 혼인 생활

1522년(중종 17) 중종과 문정왕후의 둘째 딸로 태어난 효순공주(孝順公主)는 11세가 되던 1533년(중종 28) 동갑이던 구사안과 혼인하였고, 이로 인하여 구사안은 능원위(綾原尉)에 봉해졌다.(『중종실록(中宗實錄)』 28년 3월 21일),[『이암유고(頤庵遺稿)』 권8 「능원군구공묘지명(綾原君具公墓誌銘)」] 혼인하기 한 해 전인 1532년(중종 27) 박세옹(朴世蓊)은 백성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하여 효순공주의 집을 지을 때 효령대군(孝寧大君) 옛 집의 목재와 돌을 사용할 것을 주장하였고, 중종은 사용할 수 있는 목재와 돌은 사용하라고 응답하였다.(『중종실록』 27년 2월 2일),(『중종실록』 27년 2월 2일) 그리고 17세가 되던 1538년(중종 33) 효순공주는 아이를 낳던 중 난산으로 세상을 떠났다.

한편 부마는 첩을 둘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효순공주가 세상을 떠나자 구사안은 첩을 두고 3남 2녀의 자식을 보아 문제가 되었다.[『이암유고』 권8 「능원군구공묘지명」] 그 결과 구사안은 부마로서의 은권(恩眷)을 빼앗겼다.

묘소와 후손

묘소는 강원도 춘천시 남면 추곡리에 위치한다.

효순공주는 난산으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자식을 두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구사안의 동생인 구사맹(具思孟)의 둘째아들 구홍(具宖)을 양자로 들였다. 이어 구홍 역시 후사가 없자 구홍의 친형인 구성(具宬)의 아들로서 훗날 우의정을 지낸 구인후(具仁垕)를 양자로 들여 대를 잇게 하였다.[『택당집(澤堂集)』 권10 「좌찬성증영의정능안부원군구공신도비명(左贊成贈領議政綾安府院君具公神道碑銘)」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인종실록(仁宗實錄)』
  • 『명종실록(明宗實錄)』
  • 『이암유고(頤庵遺稿)』
  • 『택당집(澤堂集)』
  • 지두환, 『중종대왕과 친인척』, 역사문화,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