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전(孝成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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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에 있던 순조의 신주를 모신 혼전(魂殿).

개설

혼전은 산릉에서 장례를 치른 뒤 신주를 모시고 궁궐로 돌아와 종묘(宗廟)에 부묘(祔廟)할 때까지 신주를 봉안하는 곳이다. 혼전의 존재 기간은 왕과 왕후에 따라 달랐으며, 왕후도 왕보다 먼저 혹은 나중에 승하하느냐에 따라 존재 기간이 같지 않았다. 왕은 장례를 치르는 시점이 대체로 승하한 지 5개월 만에 이루어지므로 혼전은 3년(27개월) 중 22개월 동안 존재하였다.

효성전은 조선 제23대 왕 순조의 혼전이다. 순조는 정조의 둘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박준원(朴準源)의 딸 유빈박씨(綏嬪朴氏)이다. 1834년(순조 34)에 순조가 승하하자 혼전의 전각명을 ‘효성(孝成)’으로 정하고(『헌종실록』 즉위년 11월 19일), 6개월 뒤 인릉(仁陵)에 장례를 치렀다. 3년의 상제가 끝난 뒤 종묘 정전 제16실에 부묘할 때까지 효성전에 신주가 봉안되어 있었다.

내용 및 특징

1834년 11월 13일 순조가 경희궁 회상전(會祥殿)에서 승하하자 장락전(長樂殿)에 빈전(殯殿)을 마련하였다. 6개월 뒤인 1835년(헌종 1) 4월에 인릉에 시신을 넣은 관인 재궁(梓宮)을 묻고 반우(返虞)하여 미리 마련한 혼전에 신주를 봉안하였다(『헌종실록』 1년 4월 20일). 이때 창덕궁에 조성한 혼전명이 효성전이다.

효성전은 창덕궁의 편전(便殿)인 선정전(宣政殿)에 설치하였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경희궁 안에 있었다고 되어 있다. 혼전이 존재한 동안 효성전은 순조를 가리키는 대명사로도 쓰였다.

효성전에서 거행한 의식은 반우한 뒤 삼우제(三虞祭)를 시작으로 칠우제(七虞祭)까지 우제를 모두 지낸 뒤 졸곡제(卒哭祭)를 거쳐 연제(練祭), 대상제(大祥祭), 담제(禫祭)를 거행하였다. 초우제(初虞祭)는 산릉 길유궁(吉帷宮)에서, 재우제(再虞祭)는 고양 원당리 행전(行殿)에서 지냈다.

1837년(헌종 3) 1월 6일 부묘 하루 전에 헌종이 효성전에 나아가 고동가제(告動駕祭)를 거행하고 돈화문(敦化門)으로 나가 신련(神輦)을 지송(祗送)하였다. 다음 날 1월 7일 순조를 종묘 정전 제16실에 부묘하였다.

변천

효성전이었던 창덕궁의 선정전은 이후 헌종, 철종의 혼전으로도 활용되었다.

참고문헌

  • 『순조국장도감의궤(純祖國葬都監儀軌)』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정옥자 외, 『조선시대 문화사』(상), 일지사,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