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문전(孝文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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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에 있던 철종의 신주를 모신 혼전(魂殿).

개설

혼전은 산릉에서 장례를 치른 뒤 신주를 모시고 궁궐로 돌아와 종묘(宗廟)에 부묘(祔廟)할 때까지 신주를 봉안하는 곳이다. 혼전의 존재 기간은 왕과 왕후에 따라 달랐으며, 왕후도 왕보다 먼저 혹은 나중에 승하하느냐에 따라 존재 기간이 달랐다. 왕은 장례를 치르는 시점이 대체로 승하한 지 5개월 만에 이루어지므로 혼전은 3년(27개월) 중 22개월 동안 존재하였다.

효문전은 조선 제25대 왕 철종의 혼전이다. 철종은 정조의 아우 은언군(恩彦君)의 손자인 전계대원군(全溪大院君) 이광(李㼅)의 셋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용성부대부인(龍城府大夫人) 염씨(廉氏)이다. 1863년(철종 14)에 철종이 승하하자 혼전의 전각명을 ‘효문(孝文)’으로 정하고(『고종실록』 즉위년 12월 15일), 5개월 뒤 예릉(睿陵)에 장례를 치렀다. 3년의 상제가 끝난 뒤 종묘 정전 제17실에 부묘할 때까지 효문전에 신주가 봉안되어 있었다.

내용 및 특징

1863년 12월 8일 철종이 창덕궁 대조전(大造殿)에서 승하하자 창경궁의 환경전(歡慶殿)에 빈전(殯殿)을 마련하였다. 5개월 뒤인 4월에 예릉에 시신을 넣은 관인 재궁(梓宮)을 묻고 반우(返虞)하여 미리 마련한 혼전에 신주를 봉안하였다(『고종실록』 1년 4월 7일). 이때 창덕궁에 조성한 혼전명이 효문전이다.

효문전은 창덕궁의 편전(便殿)인 선정전(宣政殿)에 설치하였다(『고종실록』 즉위년 12월 9일).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창덕궁 안에 있었다고 되어 있다. 혼전이 존재한 동안 효문전은 철종을 가리키는 대명사로도 쓰였다.

효문전에서 거행한 의식은 반우한 뒤 초우제(初虞祭)를 시작으로 칠우제(七虞祭)까지 우제를 모두 지낸 뒤 졸곡제(卒哭祭)를 거쳐 연제(練祭), 대상제(大祥祭), 담제(禫祭)를 모두 거행하였다.

1866년(고종 3) 2월 6일 철종의 신주를 효문전에서 모셔와 종묘에 부묘하였다. 따라서 효문전은 철종의 신주를 봉안하기 시작한 1864년(고종 1) 4월 7일부터 3년상을 마치고 종묘에 부묘한 1866년 2월 6일까지 창덕궁의 선정전에 설치되었다.

변천

효문전이 있었던 창덕궁의 선정전은 정조, 순조, 헌종의 혼전으로 계속 활용되어 온 전각이었다.

참고문헌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철종국장도감의궤(哲宗國葬都監儀軌)』
  • 정옥자 외, 『조선시대 문화사』(상), 일지사,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