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재집(晦齋集)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조선중종 때의 문신이며, 학자인 이언적(李彦迪, 1491~1553)의 유고집.

개설

『회재집(晦齋集)』은 조선중종 때의 문신이며, 학자인 이언적(李彦迪, 1491~1553)의 유고집이다. 권1∼4는 시(詩), 권5는 부(賦)ㆍ잡저(雜著)ㆍ서(書)ㆍ서(序)ㆍ논(論), 권6은 잠(箴)ㆍ명(銘)ㆍ기(記)ㆍ제문(祭文)ㆍ행장(行狀)ㆍ갈명(碣銘), 권7∼8은 소(疏), 권9 이하는 전(箋)ㆍ장(狀)ㆍ차(箚)ㆍ대학장구보유서(大學章句補遺序)ㆍ중용구경연의서(中庸九經衍義書)ㆍ구인록서(求仁錄序)ㆍ봉선잡의서(奉先雜儀序) 등으로 되어 있다.

부록으로 세계도(世系圖)ㆍ연보(年譜)와 이황(李滉) 행장(行狀), 이항복(李恒福)의 묘지(墓誌), 기대승(奇大升) 신도비명(神道碑銘), 허엽(許曄) 옥산서원 기(記), 박승임(朴承任) 강계부사묘기(江界府使廟記) 등이 수록되어 있다. 노수신(盧守愼)의 서문과 유희춘(柳希春) 등의 발문이 있다.

편찬/발간 경위

이언적이 죽은 후에 손자 준(浚)이 편찬, 간행한 것을 1631년(인조 9)에 옥산서원(玉山書院)에서 중간(重刊)하였다.

서지 사항

1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이다. 크기는 세로 28.6cm 가로 20.5cm이며,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이 책의 저자 이언적은 조선중종 때의 학자, 현신(賢臣)이며, 자는 복고(復古)이고, 호는 회재(晦齋), 자계옹(紫溪翁)이다. 시호는 문원(文元)이고, 본관은 여주(驪州)다. 중종 9년(1514) 문과 을과에 급제하여 천랑(天官郎), 인동현감(仁同縣監), 장령(掌令), 밀영부사(密陽府使) 등을 거쳐 중종 25년(1530)에는 사간(司諫))에 이르렀다. 당시 김안로의 기용 문제에 극력 반대하다가, 심언광 등의 모략으로 물러났다. 중종 32년(1537) 김안로 일파가 쫓겨난 뒤 종부시첨정, 직제학, 전주부윤을 역임했다.

수천 자의 상소를 올려, 국가 대본과 정치 강령을 논하여, 왕의 찬탄을 받고, 가선대부에 올라 예조참판, 대사헌, 대사간, 한성판윤, 이조ㆍ예조ㆍ형조 판서를 지내고, 인종 1년(1545) 의정부 우찬성이 되었다. 명종 2년 (1547) 양재역의 벽서 사건에 관련되어, 강계로 귀양을 가서, 7년 간 많은 저서를 남기고 사망했다. 선조 때 영의정에 추증되고, 광해군 2년(1610) 경주 옥산서원에 배향되었다. 후에 퇴계는 그를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와 함께 동방사현으로 추모했다. 저서에 『회재집(晦齋集)』 이외에 『대학장구보유(大學章句補遺)』, 『속혹문(續或問)』, 『구인록(求仁錄)』’ 등이 있다.

조선 전기의 가장 유명한 성리학자의 한 사람인 이언적은 주리의 학설은 퇴계이황의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28세 때 조한보와 여러 차례에 걸쳐 논쟁한 무극(無極)ㆍ태극(太極)의 학설은 조선 초유의 대논쟁이라 한다.

이 책의 권5의 잡저는 모두 성리학에 관한 그의 견해를 피력해 놓은 것으로서, 조선시대 유학사상 특히 심학 연구에 좋은 자료이다.

권7의 ‘일강십목소(一綱十目疏)’는 시정(時政)에 관한 의견을 진술한 것이다. 인주심술(人主心術)을 강(綱)으로 하고, 엄가정(嚴家政)ㆍ양국본(養國本)ㆍ정조정(正朝廷)ㆍ신용사(愼用舍)ㆍ순천도(順天道)ㆍ정인심(正人心)ㆍ광언로(廣言路)ㆍ계치욕(戒侈辱)ㆍ수군정(修軍政)ㆍ심기미(審幾微)를 목(目)으로 하여, 시정(時政)에 관한 의견을 상소한 것이다. 여기서 그는 인사 행정은 국인(國人)의 의사에 따라 시행되어야 함과 정당한 인재 등용을 촉구하였는데, 중종(中宗)은 이 소를 높이 평가하여, 그를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승급시켰다.

권8의 ‘수진팔규(修進八規)’는 1550년(명종 5) 강계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임금의 진덕(進德)ㆍ수업(修業)을 위하여 올린 상소이다. 그것은 명도체(明道體)ㆍ입대본(立大本)ㆍ체천덕(體天德)ㆍ법왕성(法往聖)ㆍ광총명(廣總明)ㆍ시인정(施仁政)ㆍ순천심(順天心)ㆍ치중화(致中和) 등으로 주자학자(朱子學者)로서 국왕의 심학 공부에 도움이 될 덕목을 상달(上達)한 것이다.

권10의 ‘병오춘차자(丙午春箚子)’는 군덕(君德)의 성취가 경연(經筵)에 있다는 내용이다. 권11의 『대학장구보유(大學章句補遺序)』는 주희(朱熹)가 지은 『대학장구(大學章句)』의 잘못된 점을 보완한 독창적인 저술이다. 『중용구경연의(中庸九經衍義)』는 『중용(中庸)』의 구경(九經)에 대하여 설명을 덧붙인 글로서 미완성작이다. 『구인록(求仁錄)』은 인(仁)을 구하는 방법을 여러 경전에서 뽑아 엮은 책이다. 『봉선잡의(奉先雜儀)』는 주자의 『가례(家禮)』를 바탕으로 하여 시속(時俗)의 잡다한 예절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그의 아들 이전인(李全仁)에게 전해 준 글로서, 이전인이 후에 저술한 책이다.

권12의 ‘홍문관상소(弘文館上疏)’는 치중화를 강으로 하고, 궁금불가불엄(宮禁不可不嚴)ㆍ기강불가부정(紀綱不可不正)ㆍ인재불가불변(人材不可不辨)ㆍ제사불가불근(祭祀不可不謹)ㆍ민은불가불휼(民隱不可不恤)ㆍ교화불가불명(敎化不可不明)ㆍ형옥불가불신(刑獄不可不愼)ㆍ사치불가불금(奢侈不可不禁)ㆍ간쟁불가불납(諫諍不可不納) 등을 구목(九目)으로 하는 시정(時政)에 대한 논의이다. 이 상소에서 민중은 누구나 다 인간으로서의 마음과 마음속의 인(仁)을 갖추고 있으며, 천지(天地)의 자양(資養)속에 만물과 함께 삶을 이루어〔成遂〕 나가고 있는 것이므로, 이 생의 성수를 잘 보장해 주는 것이 좋은 정치 곧 인의 정치이며, 이 인정(仁政)을 통하여 평화의 극치인 중화(中和)의 세계가 구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인정에 방해가 되는 것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형벌과 부세(賦稅)라 하였다.

권13 습유의 ‘시강원차자(侍講院箚子)’는 1522년 시강원 설서로 있을 때 올린 차자로, 세자의 보양(輔養)을 철저하게 하기 위해서는 서연(書筵)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이언적의 성리설(性理說)은 누구에게 배워서 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노력에 의하여 정립한 독창적인 이론이다. 뒤에 이황(李滉)과 이이(李珥)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조선성리학사에서 높이 평가할 만한 것이다.

참고문헌

  • 김교빈, 『이언적-한국 성리학을 뿌리내린 철학자』,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10.
  • 이수환,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다, 경주 회재 이언적 종가』, 예문서원, 2011.
  • 이종호, 『회재 이언적-난세의 성실한 자기경영자』, 일지사,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