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장암(煥章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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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송시열이 충청북도 괴산군 화양동 계곡에 세운 암자.

개설

환장암(煥章庵)은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靑川面)의 화양동(華陽洞) 계곡에 있던 암자이다. 1674년 우암송시열이 명(明) 의종의 친필을 받아 그것을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靑川面)의 화양동 계곡의 석벽에 새기고, 글씨 원본을 지키고 보존하고자 그곳에 환장암을 세웠다. 근대기에 환장암은 의병 운동의 본거지로 이용되었는데, 이로 인해 일본군에 의해 파괴되어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하였다. 1954년 화양동 계곡의 큰 홍수로 채운암(彩雲庵)이 매몰되어 그곳의 목재가 환장암 자리로 옮겨지면서 환장암과 채운암이 합쳐지게 되었다. 이후 채운암으로 불리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연원

노론(老論)의 영수였던 송시열은 인조 때 명(明)나라 황제 의종(毅宗)의 친필인 ‘비례부동(非禮不動)’, 즉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는 뜻의 네 글자를 북경에 사신으로 갔던 민정중(閔鼎重)을 통해서 받았다. 송시열은 이 글씨를 1674년(현종 15) 충청북도 괴산군의 화양동 계곡 석벽(石壁)에 새겼다. 그리고 석벽에 새긴 글씨와 글씨 원본을 잘 보존하기 위해 환장암(煥章庵, 현 채운암)을 세워 승려들에게 그것을 지키도록 하였다(『숙종실록』 30년 1월 10일).

송시열은 74세가 되던 1680년(숙종 34) 화양동에 은거하게 되었고, 중국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본받아 화양동 계곡에 경천벽, 운영담, 읍궁암, 금사담, 첨성대, 능운대, 와룡암, 학소대, 파곶 등 9곡(九曲)의 이름을 붙였다. 이 명칭이 지금의 화양구곡(華陽九曲)이다.

1689년(숙종 43) 송시열이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사사(賜死)되었을 때, 그는 유언으로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준 명나라 신종(神宗)과 그에게 글씨를 보내준 의종의 사당을 세워 제사지낼 것을 제자 권상하(權尙夏)에게 부탁하였다. 권상하는 스승의 뜻을 받들어 1703년(숙종 29) 민정중, 정호, 이선직 등과 함께 유생들의 협력을 얻어 화양동 계곡 환장암 가까이에 만동묘(萬東廟)를 짓고, 신종과 의종의 신위(神位)를 봉안하여 제사지냈다.

변천

(1) 근대

1826년(순조 26) 환장암의 대웅전(大雄殿)을 새로 지어 낙성식을 보았다. 1895년(고종 32)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일본의 침략에 항거하여 국내 각처에서 의병(義兵)이 일어났다. 이때 환장암이 의병의 본거지라 해서 일본 군대에 의해 대웅전을 제외한 모든 전각이 소실되었고 승려들은 뿔뿔이 흩어져 폐허가 되었다. 이때 송시열의 문집(文集) 판본(板本) 215권도 완전히 소실되었다.

(2) 현대

1954년 큰 홍수로 화양동 첨성대 안쪽 계곡에 있던 채운암이 매몰되자 이곳의 목재를 환장암이 있던 자리로 옮겨 새 건물을 짓게 되었다. 원래 채운암은 1277년(고려 충렬왕 3)에 도일(道一) 선사(禪師)에 의해 수도암(修道庵)이라는 이름으로 창건된 암자였다. 그 후 1619년(광해군 2) 혜식(慧識) 선사(禪師)가 중건하고 채운암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1954년 홍수를 계기로 조선시대에 송시열이 세운 환장암과 고려시대에 도일이 세운 채운암이 하나의 절로 합쳐지게 되었고, 이때 절 이름을 채운암(채운사)이라 하였다. 당시 암자에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칠성각과 산신각, 요사 2동이 있었다.

1975년 채운암의 대웅전을 중수하고 단청을 하였으며, 1981년에는 삼성각에 칠성탱, 독성탱, 산신탱을 새로 봉안하였다. 최근에는 정면 5칸, 측면 1칸 규모의 요사를 새로 지었다.

문화재

채운암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환장암의 상량문에 의하면 1826년(순조 26) 4월에 건립되었다.

채운암 목조여래좌상(木造如來坐像,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91호)은 조성 연도를 알 수 있는 조선시대 불상 가운데 하나이다. 복장기에 의하면 ‘옹정원년계묘(雍正元年癸卯) 5월 초’, 즉 1723년(경종 3)에 길쌍계사(吉雙溪寺)에서 조성한 것으로, 이것이 언제부터 채운암으로 옮겨와 봉안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참고문헌

  • 김용남, 「시·서에서 드러나는 화양동 ‘비례부동’의 애각과 환장암의 건립」, 『개신어문연구』, 개신어문학회, 2008.
  • 이완우, 「화양동과 우암 사적」, 『장서각』18, 한국학중앙연구원,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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