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난공신(亨難功臣)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김직재 역모사건을 평정한 공로로 광해군대에 책봉된 공신.

내용

1612년(광해군 4) 김직재와 아들 김백함이 순화군 양자 진릉군 태경을 추대하고자 무력 반란을 도모하였다는 이유로 발생한 이른바 김직재 옥사를 마무리한 후 책봉된 공신이었다. 옥사가 발생한 다음 해인 1613년(광해군 5) 5월에 김직재의 역모를 평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24명의 형난공신이 책봉되었다. 1등은 분충병의결기협모형난공신(奮忠秉義決幾協謀亨難功臣)이라 하였으며 신율·유공량 등 2명이었다. 분충병의결기형난공신(奮忠秉義決幾亨難功臣)이라 불린 2등은 이원익·이덕형·이항복 등 12명이었으며, 분충병의형난공신(奮忠秉義亨難功臣)이라 불린 3등은 윤훤 등 10명이었다. 형난공신은 인조반정 이후 삭제되었다.

용례

奮忠秉義決幾協謀亨難功臣 二等減協謀二字 三等減決幾協謀四字 一等二人 二等十二人 三等十人 申慄爲之首(『광해군일기』 5년 3월 12일)

참고문헌

  • 『국조공신록(國朝功臣錄)』
  • 신명호, 『조선의 공신들』, 가람기획,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