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국위(許國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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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파견되었던 명의 장수.

개설

허국위는 복건성(福建省) 진강현(晉江縣) 사람으로 무진사(武進士) 출신이며(『선조실록』 31년 2월 10일), 호는 원진(元眞)이다. 양호(楊鎬)가 정응태(丁應泰)로부터 탄핵당하였을 때 그를 변호하였다. 무술에 능하여 조선에 창법을 전수하였다.

활동 사항

허국위는 흠차통령복령유격장군(欽差統領福營游擊將軍)도지휘첨사(遼東都指揮僉事)라는 직함으로 1598년(선조 31) 3월에 보병 1,180명을 이끌고 조선에 입국한 후, 영일(迎日)과 장기(長鬐) 등에 주둔하였다가 1599년(선조 32) 4월에 명으로 돌아갔다. 신흠(申欽)의 『상촌선생집』에 따르면 문장을 잘하고 의기(義氣)가 있었다고 한다. 경리(經理)양호와 가장 친했는데, 양호가 정응태에게 탄핵을 받자 장관(將官)들을 이끌고 주본(奏本), 즉 중국 황제에게 올리는 글로 변호하였으며 조선에도 동참을 요청하였다(『선조실록』 31년 7월 10일). 조선에 성을 공격하기 위한 기계 제작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으며(『선조실록』 31년 5월 3일), 무예가 뛰어나 선조가 훈련도감 낭청(郎廳) 한교(韓嶠)로 하여금 그에게 창법을 배우게 하였다. 그 내용이 선조대에 편찬된 『무예제보(武藝諸譜)』에 실려 있다.

참고문헌

  • 『홍재전서(弘齋全書)』
  • 『상촌집(象村集)』
  • 『만기요람(萬機要覽)』
  • 『무예제보(武藝諸譜)』
  • 나영일, 『조선 중기 무예서 연구 : 『무예제보』·『무예제보번역속집』』,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06.
  • 김경태, 「임진전쟁기 강화교섭 연구」,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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