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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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3년(세종 15) 여러 의학서와 질병의 증상 및 처방을 수집·정리한 의학서.

개설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은 이미 간행된 『향약제생집성방(鄕藥濟生集成方)』을 기본으로 여러 의학 서적과 질병의 증상 및 처방을 수집·정리하여 1433년 6월에 완성한 의학 서적이다.(『세종실록』 15년 6월 11일) 이 책은 총 85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우리나라의 의서를 비롯하여 당(唐)나라ㆍ송(宋)나라ㆍ명(明)나라ㆍ초(楚)나라 등의 중국 의서를 합쳐 총 160여 종을 고루 참고하여 만들었다. 조선 초기에는 중국 약재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세종(世宗)은 조선의 약재인 ‘향약(鄕藥)’의 가치를 강조하면서, 중국과는 다른 조선의 지역성에 역점을 두었다. 『향약집성방』에는 703종의 한국산 의약이 소개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우리나라 의학의 체계화와 동양 의학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본문에서도 향약은 모든 백성들의 생명을 기르고 병을 치료하는 데 모자람이 없다는 면에서 그 때까지 중국의 약재가 없을 때 대용으로 사용하던 향약이 조선의 우수한 약재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책에는 향약이 값이 싸고 구하기 쉬워서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약리적으로 조선인에게 적합하기 때문에 장려하는 것이라는 논리가 담겨 있다.

편찬/발간 경위

보통 중국의 약을 ‘한약(漢藥)’ 또는 ‘당약(唐藥)’이라고 하였는데, 고려 시대 중엽 이후에 ‘향약’이라는 제목의 의서가 출간되기 시작하였으며, 고려 말에는 향약 의서로 ‘삼화자(三和子)’에 의해 『삼화자향약방(三和子鄕藥方)』이라는 책으로 집대성 되었다.

이런 가운데 조선이 건국된 후 세종은 우리나라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에는 우리나라 풍토에 적합하고,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약재가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병과 약에 대한 의토성(宜土性)을 강조하여 의약 제민(濟民)에 대한 자주적 방책을 세우고자 하였다. 그러면서 향약의 이용을 권장하기 위해서는 향약과 당약과의 약효를 비교·검토하여 그 약성의 차이를 잘 감별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1421년(세종 3) 10월 약리에 정통한 황자후(黃子厚)를 부사로서 명(明)나라에 보내 우리나라에서 생산되지 않는 당재들을 널리 구해오게 하였다. 1423년 대호군김을해(金乙亥), 사재부정((司宰副正)노중례 등을 명나라에 보내 우리나라의 약재에 대한 질의를 거듭하여 향약과 당재의 약성을 비교·연구하게 하였다. 그 해 4월 전의감(典醫監)·혜민국(惠民局)·제생원(濟生院)의 청으로 명나라에 가는 사절이 있을 때마다 당약을 가져오게 하였으며, 그 뒤에도 명나라의 사절들과 함께 따라간 우리나라의 의관들이 명나라의 대의원 태의(太醫)들과 만나 약리 약성에 관하여 많이 문의하였다.

1424년(세종 6) 11월엥는 각 도의 지리지 및 월령(月令)을 편찬하기 위하여, 각 도 관찰관에게 명하여, 각 도ㆍ각 읍에서 산출되는 토산품을 조사하게 하였다. 그리고 약재에 있어서는 토산공품(土産貢品)·생산약재(生産藥材)·종양약재(種養藥材) 등으로 나누어, 약초들의 분포실태를 세밀히 조사하였다. 그 결과 『향약구급방』, 『향약고방』 등으로 향약에 관한 내용을 의학서에 담았으며, 1431년(세종 13) 유효통(兪孝通), 노중례(盧重禮), 박윤덕(朴允德)에게 명하여 『향약집성방』을 편찬하게 하였다. 이것이 완성된 후에는 권채(權採)에게 서(序)를 짓게 하고, 같은 해 8월 전라도·강원도 두 도에서 나누어 간행하게 하였다.(『세종실록』 15년 8월 27일) 그 뒤 1478년(성종 9) 중국에서 약재를 구하기가 어렵다는 문제가 제기되면서 향약의 중요성이 다시 제기되며 복간되었고,(『성종실록』 9년 10월 29일) 1633년(인조 11)에 훈련도감 소활자로 중인이 되었다.

서지 사항

총 85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조 대에 편찬된 책은 세로 24.5cm, 가로 17.3cm이다. 지질은 한지로 되어 있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 중이다.

구성/내용

이 책은 모든 병을 57개의 줄거리로 나누고, 다시 959개 조항의 질병 증상으로 분류하여, 각각의 큰 줄거리와 조항에 해당되는 병의 원인과 증상, 치료 처방과 민간 요법 등을 『태평성혜방(太平聖惠方)』·『자생경(資生經)』·『천금방(千金方)』·『일화자(日和子)』 등의 출전과 함께 일일이 열거하였는데, 처방이 약 1만 700여 종에 이른다. 처방에 쓰이는 약초는 되도록 우리나라 것을 기본으로 하였으며, 민간에서 쓰는 이름까지 기록하였는데, 그 종류가 694종이다. 이 책에는 약의 이름과 채취 장소, 성미, 효능, 적응증, 채취 시기, 가공 방법, 배합, 금기 등을 비교적 상세히 기록하여, 향약의 채취와 이용을 권장하려는 국가적인 노력을 엿볼 수 있다. 그 밖에 책머리에는 자생경(資生經)에서 가려 뽑은 침구목록을, 책끝에는 향약본초의 총론(總論)과 각론(各論)을 각각 첨부하고 있는데, 특히 총론 중에는 제품약석포제법(諸品藥石炮製法)이 실려 있다.

이 책은 이름 그대로 향약의 채취에 적합한 월령들을 배치하였는데, 수백 종이 넘는 토산약초의 아래에 향명을 낱낱이 기록하고, 그 다음에는 약미, 약성 또는 봄·가을 채취의 조만(早晩), 음양·건폭(乾暴)의 호부(好否 :좋고 나쁨) 등을 자세히 교정하였다. 약초의 아래 향명을 붙인 것은 약용식물을 감식하는 데 있어서만 아니라, 우리의 고전어의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이지만, 채약정부(採藥丁夫)들이 알기 쉽게 향약을 채취할 수 있도록 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이 책에는 예로부터 내려오던 의학 서적과 당시 외국에서 들여온 의학 서적들을 인용한 종류가 267종으로, 현재 전해지지 않는 서적들의 내용을 복원하는 데 많은 자료를 제공해 준다. 또한 당시 국내의 실정과 백성들의 체질에 맞는 치료 방법으로 국내에서 채취할 수 있는 자원을 이용하여, 민간에서도 쉽게 치료할 수 있게 편찬한 것으로서, 의학의 자주적 발전에 많은 공적을 남겼다. 『향약구급방』과 달리 병의 원인을 설명하고 처방을 달아서 이론적인 연구의 흔적을 남긴 귀중한 책이다.

참고문헌

  • 『세종실록(世宗實錄)』
  • 『단종실록(端宗實錄)』
  • 『세조실록(世祖實錄)』
  • 『예종실록(睿宗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 김두종, 『한의약학사』, 탐구당, 1979.
  • 남광우, 「『향약채취월령』 해독고찰」, 『문경』11, 중앙대학교, 1961.
  • 남풍현, 『차자 표기법 연구』, 단국대학교 출판부, 1981.
  • 조성오, 「『향약채취월령(鄕藥採取月令)』의 차자 표기 체계 연구」, 단국대학교 대학원,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