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사의(鄕射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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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지방관이 향촌 교화를 목적으로 주재한 활쏘기 의례.

개설

본래 활쏘기 즉 사(射)는 예(禮)·악(樂)·어(御)·서(書)·수(數)와 함께 육예(六藝)의 하나로, 마음을 수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주로 무예의 수련과 경합, 유흥과 친목 도모를 목적으로 시행되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사례(射禮)인 사우사단의(射于射壇儀)는 왕이 몸소 문·무관과 더불어 활쏘기를 하면서 군신 간의 질서와 도리를 확인하고 화합을 도모하던 의식이었고, 관사우사단의(觀射于射壇儀)는 왕이 종친을 비롯한 문무백관이 활쏘기 하는 것을 참관하는 의례였다. 그에 비해 향사의는 지방관이 주재한 사례로, 서민(庶民)들도 관람하게 함으로써 향촌 교화를 증진하려는 목적으로 시행되었다.

연원 및 변천

조선시대의 사례는 『세종실록』「오례(五禮)」와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그 의주(儀註)가 정리되어 있는데,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향사의는 여러 종류의 사례 가운데 향촌을 교화하기 위해 지방관이 주재한 의례를 말한다.

그런데 향사의는 의례의 절차만 정해져 있을 뿐 실제 시행되지는 않고 있다가, 성종대에야 비로소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그에 따라 향음주례(鄕飮酒禮)와 함께 『주례(周禮)』에 기록된 제도로서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김종직(金宗直)은 선산부사(善山府使)로 재임할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향사례 및 향음주례 시행의 효과를 아뢰기도 하였다(『성종실록』 14년 8월 16일). 그러나 그 시행이 너무 번거로워 크게 행해지지는 않았다.

절차 및 내용

『세종실록』「오례」를 기준으로 향사의의 절차를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매년 3월 3일과 9월 9일에, 개성부(開城府)와 여러 도(道)의 주(州)·부(府)·군(郡)·현(縣)에서 시행한다.

행사 전날에 주인(主人), 즉 해당 지방의 수령(守令)은 효제충신(孝悌忠信)하며 예의를 좋아하고 행실이 난잡하지 않은 사람을 빈(賓)으로 선발하여 향사의에 초대한다. 학당(學堂) 근처에 사단(射壇)을 세우고, 주변에 주인과 빈의 자리, 서인(庶人)의 자리를 만든다. 정중앙에 돼지의 머리가 그려진 과녁인 시후(豕候)를 사단에서 90보(步) 거리에 설치한다.

행사 당일에 주인과 빈이 서로 대면하여 행례(行禮)한 뒤 자리를 잡으면, 먼저 향음주례를 시행한다. 술을 세 순배 돌리고는 주탁을 치운다. 사사(司射)가 빈에게 활쏘기를 청하면, 빈이 허락한다. 사사는 주인에게 이를 아뢰고, 제자(弟子)에게 명하여 사기(射器)를 바치게 한다.

주인과 빈이 임시로 짝을 지어 화살 세 발을 등에 꽂고, 한 개를 꺼내어 차례대로 쏜다. 화살을 쏠 때마다 음악을 연주하고, 절차에 맞게 한다. 활쏘기가 끝나면, 사사의 주관 하에 과녁을 맞히지 못한 사람에게 예(禮)에 따라 벌주(罰酒)를 마시게 한다. 모든 절차가 끝나고 빈이 문밖으로 나가면, 주인은 평소처럼 예를 갖추어 전송한다.

참고문헌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대사례의궤(大射禮儀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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