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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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지동물 갑각류 십각목에 속하는 동물의 총칭.

개설

게를 의미한다. 조선시대 문헌에는 매우 다양한 종류의 해(蟹)가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로 식용되었던 것은 참게, 방게, 대게 정도였다. 참게와 방게는 서해바다와 인접한 경기도 지역에서 생산되어 왕실에 진상하였고, 주로 젓갈을 만들어 먹었다. 반면, 대게는 동해안 지역이 주요 생산지였으며, 찜이나 포를 만들어 먹었다.

내용 및 특징

정약전(丁若銓)은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 『주례(周禮)』「고공기」의 주(注)와 소(疏)를 인용하여, 기는 것은 게의 한 습성으로 옆으로 간다 하여 방해(旁蟹), 방게, 횡행개사(橫行介士)라는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고 하였다. 또한 포박자(抱朴子)는 해를 무장공자(無腸公子)라고 했는데, 이는 그 속이 비어 있음을 뜻한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게의 종류를 17가지로 분류하고, 각각의 맛과 특징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는 경기도 지역의 토산물인 청해(靑蟹)와 함길도 지역에서 생산되는 자해(紫蟹)만을 기록하고 있다[『세종실록』 지리지 경기 부평도호부][『세종실록』 지리지 함길도 경흥도호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토산」조에는 해·청해·자해·대해(大蟹) 이렇게 네 종류의 해가 적혀 있다. 각각의 서식지로 판단해 볼 때, 해는 민물게인 참게를 가리키고, 청해는 방게, 자해는 대게를 가리킨다. 그러나 전라도 옥구현에서 생산된다고 하는 대해에 대해서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내용을 종합해 볼 때, 실제로 조선에서 주로 식용되었던 해는 참게, 방게, 대게 정도로 추정된다. 참게는 강원도를 제외한 한반도 전역에 널리 분포하였다. 정약전에 의하면, 참게는 봄철에 강을 거슬러 올라가 산란한 후 가을이 되면 강물을 따라 내려간다. 얕은 여울가에 돌을 쌓아 담을 만들고 새끼로 집을 지어 그 안에 넣어 두면 참게가 그 속에 들어와 은신하므로, 어부들이 밤에 횃불을 켜서 참게를 잡는다고 하였다. 참게는 한강 유역에서 특히 많이 잡혔는데, 경기도 백성들은 산 게를 미리 구하여 못 속에 넣어 두는 방식으로 진상할 게를 준비하였다(『명종실록』 3년 8월 3일)(『명종실록』 14년 3월 16일). 이렇게 진상된 생해(生蟹)는 8월 종묘 천신(薦新)에 사용하였다.

방게 혹은 방해(方蟹)로도 불리는 청해는 경기도 지역의 부평도호부, 수원도호부, 남양도호부, 안산군, 김포현, 통진현, 교동현에서 주로 생산되었다. 한치윤(韓致奫)은 『해동역사(海東繹史)』에서 청해의 색깔은 홍색이며, 크기가 사발만 하다고 하였다. 청해를 이용한 음식으로는 청해젓을 들 수 있는데,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청해를 깨끗이 씻어 물을 뺀 후 항아리에 담는다. 간장을 펄펄 끓여 식힌 후에 게가 잠길 만큼 붓는다. 밀봉하여 수삼일 동안 숙성시킨다.

오늘날 대게라 불리는 자해는 냉수대에 분포한다. 따라서 동해안과 인접한 경상도, 강원도, 함경도 지역이 자해의 주요 산지였다. 허균(許筠)은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서 삼척에서 나는 자해는 크기가 강아지만 하고 다리가 곧게 쭉 뻗은 대나무 같다고 하였다. 자해가 대게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에 의하면, 자해는 맛이 달고 포를 만들어 먹어도 좋다고 하였다. 또한 자해는 찜을 쪄 먹어도 맛이 좋았다. 실제로 고려시대 문인인 이규보(李奎報)는 자해찜을 좋아해서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여러 편의 시를 남기기도 하였다. 자해찜을 만드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자해에 붙어 있는 이물질을 제거한 후 찜통에서 20분간 찌고 5분 정도 뜸을 들이면 되는데, 이때 배가 위쪽으로 오도록 뒤집어 놓고 쪄야 육즙이 빠져나가지 않아 맛이 더욱 좋다.

참고문헌

  •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해동역사(海東繹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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