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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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개설

염교의 한자어이다. 『훈몽자회(訓蒙字會)』에서는 ‘염교 구(韮)’라고 했다. 구(韮)는 염교를 가리킨다. 다른 말로 채지(菜芝), 해채(薤菜)가 있다. 불교의 오신(五辛) 금지 관념이 확산되어 왕실의 제사를 집례하는 자와 참여하는 군관들은 제향을 앞두고 염교를 먹지 않았다. 심지어 부모의 3년상을 치를 때도 염교가 들어간 오신을 먹지 않는 것을 규례로 여겼다. 염교는 음식을 조리할 때 향신료로 쓰였다.

원산지 및 유통

중국이 원산지이다. 중국을 비롯하여 한반도와 일본에서 자란다.

연원 및 용도

종묘에서 제향을 올리기 전 재계(齋戒) 때에 집사관과 제사에 참여할 군관은 함부로 술을 마시지 말고, 파[葱]·부추[韭]·마늘[蒜]·염교[薤]를 먹지 말라고 했다. 혹시 어김이 있으면 나라가 형벌을 받게 된다고 했다[『세종실록』 오례 길례의식 친협종묘의 재계]. 이러한 인식은 불교에서 유래한 것이다. 중국의 남북조시대 유송(劉宋)에서 유행한 『범망경(梵網經)』에서는 중생(衆生)은 육고기를 먹으면 안 되고, 오신을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오신’은 마늘·파·부추·염교·무릇[興渠]를 가리킨다. 염교를 쉽게 구하기 어려웠던 고려의 절에서는 달래로 오신을 구성하였다. 대체로 ‘오신’은 자극이 강하고 냄새가 많이 나는 특징이 있다. 아마도 식욕을 돋우고 정력을 높여서 수양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생긴 규율로 여겨진다.

조선에서는 부모의 3년상을 치르면서 시묘(侍墓)를 할 때도 염교가 들어간 오신을 먹지 않았다. 중종 때 부안현(扶安縣)의 진사(進士)송세정(宋世貞)은 효성이 지극하여 아비가 죽은 후 3년 동안 시묘하면서 염교를 비롯한 오신을 먹지 않아 온 고을이 모두 그의 효성을 칭찬하였다(『중종실록』7년 5월 9일).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에서는 연계찜을 만들 때 연한 닭에 자소(紫蘇) 잎과 함께 염교·파·생강·후추·천초 등을 향신료로 썼다.

참고문헌

  • 『범망경(梵網經)』
  •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
  • 『훈몽자회(訓蒙字會)』
  • 김종덕, 「葷菜類에 대한 文獻的 考察-大蒜, 小蒜, 韭, 薤, 葱을 중심으로-」, 경희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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