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미현(海美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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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설치된 조선시대 지방 관청이자 행정구역 명칭.

개설

해미현(海美縣)은 조선시대 충청도 홍주목에 속한 현이다. 1407년(태종 7)에 정해현(貞海縣)과 여미현(餘美縣)을 합쳐서 설치하였다. 15세기에 호수가 258호, 인구가 855명이었다. 군정(軍丁)은 시위군(侍衛軍) 5명, 진군(鎭軍) 3명, 선군(船軍) 79명이었다. 토지는 2,763결인데, 이 가운데 논이 3/7 정도를 차지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해미군으로 승격하였으며, 1914년에 서산군에 통폐합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해미현은 1407년에 정해와 여미 2개의 현을 합쳐서 설치하였다. 정해현은 고려 태조 때 지금의 충청남도 홍성군 지역인 고구현(高丘縣)의 땅을 떼어 정해현으로 고친 것이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운주(運州)의 임내로 삼았다가, 뒤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여미현은 백제의 여촌현(餘村縣)이었다. 통일신라시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여읍현(餘邑縣)으로 고쳐 지금의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 지역인 혜성군(槥城郡)의 속현으로 삼았다. 고려시대에 여미현으로 고쳤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운주의 임내로 삼았다가, 1106년(고려 예종 1)에 비로소 감무를 두었다. 이렇게 두 현을 합쳐서 충청도 홍주목 해미현을 설치하였으며, 읍치는 정해에 두었다. 1413년(태종 13)에 감무를 현감으로 고쳤다. 해미는 충남 지역 최대의 해안군사 요충지로서 충청병영과 충청수영이 모두 이곳에 있었다. 병영은 1416년(태종 16)에 덕산(德山)에서 해미현으로 옮겨 왔다. 그러나 두 영이 모두 해미에 있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하여 1651년(효종 2)에 병영은 청주로 옮겨 갔다.

조직 및 역할

수령은 종6품 현감이다. 조선후기에는 무관을 수령으로 임명하는 지역으로 종2품 영장토포사(營將討捕使)가 겸하였다. 18세기 통계에 의하면, 좌수 1명, 별감 2명, 군관 8명, 아전 15명, 지인 14명, 사령 6명, 군관 30명, 관노 5명, 관비 4명이 속해 있었다.

변천

조선후기에는 5개 면으로 구성되었다. 편호는 2,591호, 인구는 남자 4,185명, 여자 4,776명이었다. 1759년(영조 35)의 기묘장적(己卯帳籍)에 토지는 밭 734결 57부 8속, 논 702결 37부 8속이었다. 1895년에 지방제도 개정으로 전국을 23부(府)의 행정 구역으로 나누었는데, 이때 홍주부 해미군으로 승격하였다(『고종실록』 32년 5월 26일). 1896년(고종 33)에 충청남도 해미군이 되었으며, 1914년의 군현 통폐합으로 서산군에 흡수되었다.

참고문헌

  • 『대동지지(大東地志)』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해미읍지(海美邑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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