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기략(海東紀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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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조선부터 조선 중기까지의 역사를 편술한 책.

개설

『해동기략(海東紀略)』은 19세기에 편찬되었으나, 저자ㆍ저술 동기 등은 정확히 알 수 없다. 권1의 「제국연혁(諸國沿革)」조에 발해 15부(府)의 지리를 고증하면서, 각주를 달아, “외조고(外祖考) 다산공(茶山公)이 지은 『발해고(渤海考』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정약용(丁若鏞)의 외손이 저술한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서지 사항

2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필사본이다. 크기는 세로 29cm 가로 20cm이며,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권1에 방역총목(方域總目)ㆍ역대사적(歷代事蹟)ㆍ제국연혁(諸國沿革), 권2에 강역연혁(疆域沿革)ㆍ방언(方言)ㆍ압수외지(鴨水外地)ㆍ부연경접해제국(附連境接海諸國)ㆍ장백산이북토산(長白山以北土産)이 수록되었다.

전체적으로 서술 대상을 항목으로 내세운 뒤 행을 바꾸어, 한 단 낮추어 설명하는 방식으로 서술하였다. 그러나 항목의 분류에 일관성이 없고, 권2의 뒷부분은 정리가 덜 된 것으로 보아 완성되지 못한 책으로 생각된다.

내용을 보면, 「방역총목」에서는 한사군(漢四郡) 이래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국토의 위치를 고증하였다. 「역대사적」에서는 단군조선 이래 조선 중엽인 1678년(숙종 4)까지의 시기를 대상으로 왕조별 정치ㆍ경제ㆍ문화면의 치적을 서술하였다. 또한 단군조선ㆍ기자조선ㆍ위만조선을 동등한 위치에 놓고 각각의 도읍지ㆍ출자(出自)ㆍ치적 등을 서술하였다.

아울러 각 왕조에 대한 서술 뒤에 이와 관련된 권근(權近)ㆍ이덕무(李德懋)ㆍ유득공(柳得恭) 등이 지은 ‘시’나 ‘부’를 전재하였다. 삼한에 대해서는 지리적 위치를 『삼국사기』와 『고려사』를 비교해 고증하였다.

또한 이 책은 상고(上古)부터 조선 중기까지의 방역총목(方域摠目)ㆍ역대사적(歷代事蹟) ㆍ제국연혁(諸國沿革) 등에 관하여 서술하고 있다. 먼저 방역총목에서는 사군(四郡)ㆍ삼국(三國)ㆍ신라구주(九州)ㆍ고려(高麗) 4경(京)ㆍ4패수(浿水)ㆍ4조선(朝鮮) 등 26항목의 방역에 대하여 설명하고, 역대사적에서는 단군조선에서부터 숙종 때까지의 중요사적을 중심으로 서술하였다.

‘제국연혁’에서는 북부여(北扶餘)를 비롯, 태봉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국가의 연혁을 서술했을 뿐만 아니라, 임나(任那)ㆍ읍루(挹婁)ㆍ숙신(肅愼) 등의 역사를 다루었다. 특히, 발해사에 비중을 두어, 그 연혁을 자세히 서술하고, 15부의 지리를 고증하였다.

‘강역연혁’에서는 당시 사학계에서 주요 논쟁점이 되고 있던 낙랑군(樂浪郡)ㆍ안시성(安市城)ㆍ패수(浿水) 등의 지리적 위치를 고증한 여러 학설을 비판하였다. 이어 조선시대 각 도 군현의 위치ㆍ연혁ㆍ인물ㆍ정자ㆍ유적 등을 서술하고 관련된 시를 실었다.

‘방언’에서는 신라의 거서간(居西干)ㆍ차차웅(次次雄) 등 군주의 호칭, 갈문(葛文)ㆍ화랑(花郎)ㆍ공형(公兄) 등과 같은 역사적 용어, ‘산유화곡(山有花曲)’과 같은 향가(鄕歌) 등을 항목으로 설정해 설명하였다.

‘압수외지’에서는 환도(丸都)ㆍ국내성(國內城) 등 압록강 근처 34곳의 위치를 고증하였다. ‘부연경접해제국’에서는 우리 나라와 인접한 여진ㆍ거란ㆍ몽고 등 북방족의 연혁과 일본의 역 사를 다루었다. ‘장백산이북토산’은 장백산 이북 지방의 토산물을 소개하였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근대로의 이행기인 19세기 재야 남인학자의 역사 인식을 보여준다. 아울러 당시 우리 역사학이 중세사학을 탈피하고 근대사학으로 발돋움하는 과도기적인 단계에 서 있음을 보여주는 역사서이다. 또한, 청나라 고증학의 영향으로 역사학에서 문헌고증주의가 발달하던 시기에 나온 저술로서, 우리 나라 역사ㆍ지리의 문제점들을 고증하고 있다.

특히 저자는 단군조선 이래 삼한시대까지의 상고사에서 이설이 분분한 지명을 여러 문헌자료를 비교해 그 위치를 비정하였다. 상고사, 그 중에서도 특히 발해사의 위치 비정은 외할아버지인 정약용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리하여 중국 및 우리나라의 여러 서적을 참고하고, 반드시 그 전거를 밝혔다. 즉 중국의 『한서(漢書』 지리지나, 『후한서後漢書)』ㆍ『통고通考』 뿐만 아니라, 『고려사』ㆍ『문헌비고』ㆍ『동국여지승람』 등 우리나라의 관찬사서와 홍만종(洪萬宗)의 『괄지지(括地志)』, 정약용의 『강역고(疆域考)』 등을 널리 인용하고, 그 내용을 서로 비교, 검토하였다.

문헌에 그치지 않고 조선시대 권근ㆍ유득공ㆍ이덕무 등이 역사적 사실과 관련해 지은 시ㆍ부 등도 인용하였다. 또한 우리 역사를 청나라 역사에 포함시켜, 해소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편찬한 청나라의 『요사(遼史)』 지리지와 『대청일통지(大淸一統志)』ㆍ『성경통지(盛京通志)』 계통의 문헌의 오류를 비판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강병수, 「조선 후기 성호학파의 단군조선 인식-『성호사설』ㆍ『동사강목』 기사를 중심으로」, 『선도문화』 제2집, 국제평화대학원대학교 선도문화연구원, 2007.
  • 도현철, 「목재 홍여하의 역사서 편찬과 고려사 인식」, 『한국사상사학』 43호, 한국사상사학회, 2013.
  • 박인호, 「조선중기(朝鮮中期) 한국나학(韓國懦學)의 특위(特偉)과 반성(反省): 『해동잡록』에 나타난 권별의 역사인식(《海東雜碌》中所放映的權鱉的歷史認識)」, 『퇴계학과 유교문화』 52집, 경북대학교퇴계연구소,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