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괴제(解怪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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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에 괴이한 현상이 발생하였을 때 이를 물리치기 위하여 지내는 제사.

개설

해괴제(解怪祭)는 재이(災異)로 간주되는 괴이한 현상이 발생하였을 때 이를 물리치는 제사이다. 고려시대에는 천변(天變)과 지변(地變)을 없애기 위해서 불교·도교·무속의 제의를 많이 거행하였지만, 조선시대에는 이를 유교 형식에 맞추어 관리가 주제하도록 하였다. 점차적으로 해괴제는 지진이 발생하였을 때만 거행하는 지진 해괴제로 바뀌었다. 지진이 발생한 것을 중앙에 보고하면 중앙에서 향축을 내려주어 해괴제를 지내게 하였다. 여러 고을에서 지진이 발생한 경우에는 해당 고을 중 중앙의 고을을 선택하여 제향 장소를 마련하였다. 제의의 형식은 기고제(祈告祭)에 준하여 마련하였다.

변천 및 특징

비일상적인 자연현상은 어떤 일의 전조로 간주되어 사람들을 동요시켜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리하여 이러한 현상들을 설명하고 그 원인을 파악하여 불행을 미리 예방하고 물리치는 것은 위정자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해괴제는 이러한 재난의 전조를 불식시키기 위한 기양의례(祈禳儀禮)의 일종이다.

조선시대 해괴제는 세 시기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태조대에서 정종대까지이다. 태조대에 행해진 성변(星變), 즉 별들에 나타난 이상 현상에 관한 해괴제는 1건만 보일 정도로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이것은 당시 괴이한 현상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괴이한 현상이 발생하였을 때 불교, 도교, 무속 등에 의존하여 해결하였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태종대에서 중종대까지이다. 해괴제는 태종과 세종 연간에 갑자기 증가하였다. 종소리가 나는 것, 산이 붕괴되는 것, 돌이 움직인 것, 지진, 해수의 적조, 들짐승의 출현 등이 발생하였을 때 해괴제를 설행하였다. 세종대에는 한양 궁궐에 부엉이, 올빼미 등의 야조(野鳥)가 자주 출몰하여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였다. 이러한 현상들은 『고려사(高麗史)』「오행지(五行志)」에 나오는 재이들과 거의 일치한다. 해괴제가 늘어난 것은 기존에 불교와 도교 등에 의존하였던 기양의 방식을 배제하고 국가 주도의 의식으로 전환하였기 때문이다. 이 시기 해괴제는 서운관(書雲觀) 관원들이 거행하였다. 문종대에 이르러서는 지방의 해괴제는 중앙에서 향축을 내려보내 해당 지역 지방관으로 하여금 거행하게 하였다(『문종실록』 1년 6월 22일).

세 번째는 명종대 이후로 해괴제의 기양 대상이 지진으로 축소된다. 조선초기 해괴제의 기양 대상에서 천변과 성변은 자주 등장하였고, 그 밖에 야조의 출현 등 다양한 괴이 현상을 해괴제가 담당하였다. 그러나 천문학과 천견전(天譴的) 수양론이 발달하면서 이런 괴이함을 물리치기 위한 제의(祭儀)는 축소되었다. 이런 가운데 지진만이 해괴제의 대상으로 간주되었다. 지진이 발생하였을 때 사직에게 기고제를 거행하는 것은 문종대에 마련한 법식이었다(『문종실록』 2년 4월 25일). 조선후기 해괴제에 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보다 『해괴제등록(解怪祭謄錄)』에서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1638년(인조 16)부터 1693년(숙종 19) 사이에 기록된 이 등록의 해괴제 내용 역시 지진만을 다루고 있다.

참고문헌

  • 『해괴제등록(解怪祭謄錄)』
  • 이욱, 『조선시대 재난과 국가의례』, 창비, 2009.
  • 권용란, 「조선시대 해괴제(解怪祭) 연구」, 『역사민속학』22,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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