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이진왕(哈爾秦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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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지배기 때의 몽골 하라친 우익 호쇼의 제5대 수장.

개설

합이진왕(哈爾秦王)은 동몽골의 부족 중 하나인 하라친([喀喇沁], Kharchin)의 왕을 한자로 표기한 말이다. 하라친은 몽골제국 이후 시기 동몽골을 구성하는 6만호 중 융시에부 및 아수드(Asud)와 함께 하나의 만호를 구성하는 부족이다. 원래 서방 킵차크족의 후예로 몽골제국 제4대 대칸인 몽케([蒙哥], Möngke) 칸 시대에 킵차크의 일부가 몽골에 투항하러 왔다. 그들은 하라 이섹(qar-a iseg: 검은 색 말의 젖, 즉 마유주)을 잘 만들었기 때문에 ‘하라치([哈剌赤], Kharachi, 마유주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뜻)’라 불리게 되었다.

내용 및 특징

하라친은 원나라 때에는 오늘날 몽골국 서부에 거주하였으며 에센([也先], Esen) 때에 이르러서 오이라트(Oyirad)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에센이 죽자 하라친의 수령 볼라이([孛羅], Bolai)는 1455년 오이라트의 알락([阿剌], Alaγ)을 죽이고, 남진하여 하투(河套)에서 거주하게 되었다. 그 이후 그는 몰리하이([毛里孩], Muuliqai)와 함께 톡토부하([脫脫不花], Toγtobuq-a) 칸의 남은 아들 마하구르기스([馬可古兒吉思], Maqagürgis)를 칸 위에 옹립하고 태사(太師)가 되어 실력을 장악하였다.

다얀([達延], Dayan) 칸 시대에 와서 하라친은 융시에부 산하의 오톡([營], toγ)이 되었으며 16세기 때에는 하라친은 몽골의 대칸을 도와 적극적으로 협력하였으며 알탄([俺答], Altan) 칸의 명나라에 대한 공격에도 참여하였다.

릭단([林丹], Ligdan) 칸 때에 와서 하라친은 그와 대결하였는데 1629년 릭단 칸이 하라친 등 부족을 공격하자 하라친의 수령인 수부다이(Subudai)는 세렝(Sereng) 등과 함께 부족을 이끌고 후금에게 항복하였다.

1635년 수부다이의 아들 구루스힙(Gürüskib)을 자삭(jasaγ)으로 삼아 우익 호쇼를, 세렝을 자삭으로 삼아 좌익 호쇼를 통치하도록 하였다. 1649년 구루스힙에게 베일레([貝勒], beyile)의 작위를 수여하였다. 1705년 또 하나의 호쇼(qosiγu)를 편성함으로써 하라친은 3개의 호쇼로 구성되게 되었다. 호쇼는 기(旗)로 번역되는 몽골의 행정단위로 1개의 부족 집단을 일컫는다. 하라친 세 호쇼는 조스트(Josutu) 맹(盟)에 예속되었다. 맹은 몽골의 행정단위로 여러 개의 부족 연합을 말한다.

가계

하라친의 귀족들은 우량하이 씨로 칭기즈칸 때의 공신 젤메(Jelme)의 후예이다. 갈산(Galsan)은 구루스힙의 차남인 자시(Jasi)의 차남이다.

활동 사항

구루스힙의 손자 갈산은 1692년 청의 화석공주(和碩公主)와 결혼시켜 부마로 삼았다. 1704년 그는 군왕(郡王)의 작위를 이었는데 1711년 작위를 박탈당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조선왕조실록』에서 합이진왕이 확인되는데, “제3공주(第三公主)가 시집간 몽골의 합이진왕이 또 반역하여 올봄에 경사(京師)에 붙잡아 가두었다(『숙종실록』 37년 6월 18일).”는 기록이 있다.

참고문헌

  • Ван Мандуга, Монголын түүхийн толь, ӨМАХХ, 1999. (왕 만두가 주편, 『몽골사 사전』, 내몽골인민출판사, 1999.)
  • Хөрвүүлсэн Ц. Цэрэндорж нар, Зарлигаар тогтоосон гадаад монгол, хотон аймгийн ван гүнгүүдийн илтгэл шастир, Согоо нуур, 2007. (Ts. 체렝도르지 등 역주, 『흠정외번몽골회부왕공표전(欽定外藩蒙古回部王公表傳)』, 소고오 누우르,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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