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시(合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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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험을 합쳐서 실시하는 것.

개설

시험 장소를 두 곳에 설행해야 하는 것을 한 곳에 모아 시행하는 경우와 따로 설행해야 하는 시험을 합쳐서 한 번으로 실시하는 경우에 합시한다고 하였다. 흉년이나 재해로 인하여 두 곳에 시장을 개설하기 어려울 때, 두 번 이상 치러야 하는 시험을 경비 절감이나 운영상의 편의를 위해서 합시하였다.

내용 및 특징

합시는 두 시험을 합쳐서 실시하는 것을 말하였다. 합시의 방법은 시험 장소를 합치는 경우와 시험을 합치는 경우가 있다. 장소를 합치는 경우는 같은 시험을 두 군데에서 시행해야 하는 것을 한 곳에 모아 시행하는 경우였다. 두 곳에서 치르기 어려운 사정이 있을 때 합시하였다.

1534년(중종 29) 문과복시 초장에서 강경 인원이 너무 적어 중장과 종장의 시험장을 두 곳으로 나누지 않고 합시하여 한 곳에서 실시하였다(『중종실록』 29년 윤2월 24일). 1605년(선조 38)에는 경기도가 추수의 가망이 없을 정도로 심한 풍수해를 입어 경기도 향시를 서울의 한성시에 합시하여 실시하였다(『선조실록』 38년 7월 27일). 1660년(현종 1)에는 평안도에 흉년이 들어 증광시 문과초시를 두 곳에서 치르지 않고 중앙에 도회소(都會所)를 정하고 합시하여 청천강 이남과 이북의 응시생들을 한 장소에서 시험 보도록 하였다(『현종실록』 1년 7월 30일). 지방에서 치르는 문과향시는 좌도와 우도에서 각각 시험을 치렀는데 도회소를 설치하고 한 곳에서만 시험을 치를 때 합시한다고 하였다.

시험을 합치는 경우는 두 차례 실시해야 하는 시험을 합해서 한 번으로 실시하는 것이었다. 1616년(광해군 8)의 별시는 부묘(祔廟)를 경축하는 시험과 중시(重試) 대거 별시를 합시하여 설행한 시험이었다(『광해군일기[중초본』 8년 10월 1일]). 1886년(고종 23) 정시는 대왕대비전의 보령 80세를 축하하는 경과(慶科)와 정시를 합시한 시험이었다(『고종실록』 23년 1월 8일).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