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유재(咸有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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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정관헌의 남쪽에 있는, 고종이 신하들을 인견한 건물.

개설

고종은 1896년(고종 33)에 즉조당(卽阼堂)만 있던 경운궁에 필요한 전각을 건설하여 궁궐로 활용할 수 있도록 수리하였으며, 1897년(광무 1)에 경운궁에 임어하였다. 이때에 함유재(咸有齋)가 건립되어, 고종은 1897~1899년(광무 3)에 함유재에서 의정부(議政府) 대신(大臣)을 비롯하여 비서원(秘書院) 등의 신하들을 만나 정사를 의논하는 장소로 사용하였다(『고종실록』 35년 9월 10일).

고종은 1907년(융희 1)에 왕위를 순종에게 양위하고 태왕으로 물러난 뒤, 1912년에 함유재에 잠시 머물렀으며, 1915년에는 이곳에서 일본 총독백작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를 접견하기도 하였다(『순종실록부록』 8년 10월 25일).

위치 및 용도

함유재는 경효전(景孝殿)의 북행각 북쪽에 남향으로 위치하였다. 동쪽에는 가정당(嘉靖堂)과 석어당(昔御堂)이 있으며, 북쪽에는 정관헌(靜觀軒)이 있다.

변천 및 현황

함유재는 1896년에 경운궁 수리공사 기간에 건립되어, 1897년에 고종이 경운궁을 사용할 때에 활용할 수 있었다. 1904년(광무 8)에 함녕전에 화재가 일어나 즉조당과 석어당을 비롯하여 경운궁의 많은 전각이 불탔다(『고종실록』 41년 4월 15일). 함유재도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다른 전각들과 함께 재건되었다. 이에 관한 건축 기록은 『경운궁중건도감의궤(慶運宮重建都監儀軌)』를 통해 남겨져 있다.

형태

함유재는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12칸 규모의 전각이다. 평면 구조는 가운데 2칸은 마루를 두었고, 동온돌과 서온돌을 갖추었다. 『경운궁중건도감의궤』「도설(圖說)」을 통하여 건물의 외형을 추정할 수 있으며, 「경운궁중건배치도(慶運宮重建配置圖)」에 평면의 칸수가 표시되어 있어 규모를 확인할 수 있다.

1고주 5량의 구조이며, 굴도리를 사용하고 장혀와 소로를 끼운 소로수장집이다. 지붕은 맞배지붕이며, 겹처마를 두었다. 좌우 측벽은 지붕까지 연결하여 벽돌로 쌓아 만들었다. 흠문각과 벽체의 구성이 유사하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경운궁중건도감의궤(慶運宮重建都監儀軌)』「경운궁중건배치도(慶運宮重建配置圖)」「덕수궁지도(德壽宮地圖)」
  • 문화재청, 『덕수궁복원정비기본계획』, 문화재청,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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