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閑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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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부터 60세까지의 양민 장정 중에 군역이 부과되지 않은 자.

개설

조선시대의 군역은 본래 16세부터 60세의 양인 남자에게 부과되었다. 그러나 이에 해당되는 사람들 모두에게 군역이 부과된 것은 아니었다. 대개 군현별로 일정한 숫자를 배정하여 그 숫자만큼의 양인에게만 군역을 부과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을 안에는 군역이 부과되지 않은 양민 장정이 적지 않았다. 이들을 한정(閑丁)이라고 하였다.

내용 및 특징

군총은 군현 내 양정의 수보다 적게 배정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한정이 있기 마련이었다. 문제는 누가 한정이 되고 누가 군정(軍丁)이 되는가 하는 것이었다. 대개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은 군정이 되고 부유하고 힘 있는 백성들은 한정이 되었다. 그러므로 가난한 군정들이 세금을 내지 못하게 되고 그것이 누적되면 도망하여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켰다.

중앙정부는 군역제의 원활한 운용을 위하여 충분한 한정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충분한 한정을 확보하는 방법은 2가지였다. 한정을 대대적으로 색출해 내거나, 아니면 군총 자체를 줄이는 것이었다.

변천

임진왜란 이후 숙종 초까지는 임진왜란 이전의 군제를 복구하고 새로 신설된 오군영(五軍營)의 군사를 채우기 위하여 한정 색출이 간헐적으로 이루어졌다. 광해군대부터 현종대까지 종종 논의되고 시행되었던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이나 호패법(號牌法)이 바로 이 맥락에서 진행된 일이었다(『현종개수실록』 1년 7월 3일). 그러나 군역 부담자를 늘리기 위한 이러한 정책은 여러 가지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그다지 효과를 거두지도 못하였다. 그래서 숙종 초부터는 군액 감축이 논의되고, 호포론을 시작으로 양역제 자체를 근본적으로 뒤바꾸려는 양역변통론이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참고문헌

  • 김성우, 「조선후기 ‘한유자’층의 형성과 그 의의」, 『사총』 40·41, 1992.
  • 김용섭, 「조선후기 군역제 이정의 추이와 호포법」, 『성곡논총』 제13집, 1982.
  • 정만조, 「조선후기의 양역변통논의에 대한 검토: 균역법성립의 배경」, 『동대논총』 7, 1977.
  • 정연식, 「조선후기 ‘역총’의 운영과 양역 변통」,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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