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온빈(韓溫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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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581년(선조 14)~1664년(현종 5) = 84세]. 조선의 14대 왕인 선조(宣祖)의 후궁.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아버지는 중추부(中樞府) 첨지사(僉知事)를 지낸 한사형(韓士亨)이며, 어머니 죽산 박씨(竹山朴氏)는 박유년(朴有年)의 딸이다. 할아버지는 한호(韓琥)이고, 증조할아버지는 한종수(韓鍾壽)이다.

선조의 후궁

한온빈(韓溫嬪)은 12세 때인 1592년(선조 25) 선조의 후궁으로 궐에 들어와 1604년 숙의(淑儀)를 거쳐 귀인(貴人), 빈으로까지 품계가 올랐다.(『선조실록』 37년 11월 12일),[『종반행적(宗班行蹟)』 권2]

1608년(선조 41) 선조가 세상을 떠난 후 사가로 나와 살던 한온빈은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 때 큰아들 흥안군(興安君)이 난을 일으킨 자들과 내통하였다는 죄로 사형되는 아픔을 겪었다.(『인조실록』 2년 2월 16일) 1627년(인조 5) <정묘호란(丁卯胡亂)>이 벌어지자 양주(楊州) 지역으로 피난을 갔는데 이 때 인조가 한온빈에게 음식을 각별히 신경 써서 올리라고 해당 고을에 명하였다.(『인조실록』 5년 2월 28일) 이후에도 인조는 한온빈이 반찬이 없어 고생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녀에게 조(租)·장·소금 등을 지급하였다.[『승정원일기』인조 15년 1월 7일],[『승정원일기』인조 15년 1월 21일],[『승정원일기』인조 15년 1월 28일]

출궁 후 사가에서 이렇게 빈한하게 지내던 한온빈은 84세가 되던 1664년(현종 5) 세상을 떠났다.[『종반행적』 권2]

묘소와 후손

한온빈의 무덤은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복지리홍복산에 위치해 있다.

한온빈은 선조와의 사이에서 3남 1녀를 두었다. 1남은 흥안군이제(李瑅)로 첫 번째 부인은 한인급(韓仁及)의 딸이고(『선조실록』 40년 3월 4일), 두 번째 부인은 윤신(尹伸)의 딸이다. 이괄의 난에 연루되어 사형되었다. 2남은 경평군(慶平君)이늑(李玏)으로 최윤조(崔胤祖)의 딸과 혼인하였다. 3남은 영성군(寧城君)이계(李㻑)로 부인은 황이중(黃履中)의 딸이다. 1녀인 정화옹주(貞和翁主)는 어려서부터 병치레가 이어지고 말을 못해 혼례를 치루지 못하다가, 동창위(東昌尉)권대항(權大恒)과 혼인하였다.(『인조실록』 7년 10월 2일)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인조실록(仁祖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記略)』
  •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
  • 『종반행적(宗班行蹟)』
  • 지두환, 『선조대왕과 친인척』, 역사문화,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