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첩(下帖)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조선시대 지방관이 예하의 기관이나 개인 등에게 발급한 문서.

개설

조선시대의 첩(帖)은 임명을 위한 차첩(差帖), 금제(禁制)의 허용을 위한 물금첩(勿禁帖) 등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된 문서였다. 하첩(下帖)은 문맥에 따라 ‘첩을 내린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했지만, 지방 수령이 자신의 관할권 내의 향교, 서원, 민인 등에게 내린 지시 문서를 지칭한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경우 ‘下帖’이라 쓰고 ‘하체’라고 읽기도 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하첩은 명(明)대에 제정된 『홍무예제』의 하첩식(下帖式)을 수용한 문서이다. 조선초에 중국의 관문서 제도를 수용하여 관서 상호 간의 위계에 따라 첩정(牒呈), 평관(平關), 하첩 등의 문서 체제를 세웠다(『태종실록』 4년 4월 6일). 여기서 하첩은 각 수령이 주군사(州郡司)에 내리는 문서였다.

내용

하첩은 조선시대 지방관이 예하의 향청, 향교, 서원, 민인 등에게 특정 사항에 대한 지시나 행정 명령을 내리기 위해 발급한 문서이다. 『경국대전』에 규정된 첩식(帖式)에 의거하여 작성되었다. 첩식은 ‘某司爲某事’로 시작하여 전달하고자 하는 본론을 적은 다음 마지막 부분에 ‘合下仰照驗施行 須至帖者 右下某 准此’라는 형식을 준수하여 작성되었다.

실제 문서로 남아있는 하첩의 용례를 살펴보면 문서의 시작 부분에 주로 ‘상고사(相考事)’, ‘복호사(復戶事)’, ‘절급사(折給事)’, ‘지위사(知委事)’, ‘성화거행사(星火擧行事)’ 등의 문구를 기재하였다. 이 문구들은 문서의 발급 목적을 명시한 것이다. 즉 하첩이 어떤 사안에 대한 검토 결과에 대한 통보, 특정 가호에 대한 복호 문제, 토지나 노비 등의 절급에 대한 일, 어떤 결정 사항에 대한 통보나 이행의 독촉 등에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첩 외에도 조선시대 지방관들이 예하에 내린 문서로는 평관, 감결(甘結), 전령(傳令) 등이 있는데, 이들 문서와 하첩과의 차이점과 용도는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평관은 관서와 관서 사이에 사용된 전형적인 관문서이고, 감결은 주로 관찰사가 예하의 수령들에게 내린 문서였으며, 전령은 수령들이 예하의 차사(差使)나 단체에 발급한 문서였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사용된 하첩의 용례는 단순히 상급 관서에서 하급 관서로 첩을 내린다는 의미로 사용된 경우와(『태종실록』 14년 11월 3일) 독자적인 문서명으로 거론된 경우로(『세종실록』 18년 12월 21일) 구분된다. 따라서 용례에 따라 살펴보아야 한다.

하첩의 발음 문제는 한자음 그대로 하첩이라고 해도 무방하나, 조선시대 한글 자료에서는 ‘下帖’에 대해 ‘하체(하톄)’로 표기한 경우들이 있어 문서명일 경우 ‘하체’로 발음했을 것으로 보인다.

변천

하첩은 조선전기에 제정된 첩식에 따라 조선시대 내내 큰 변화 없이 사용되었다. 다만, 지방의 수령이 예하의 단체나 개인에게 발급한 지시 성격의 첩을 하첩 또는 하체라고 지칭함으로써 다른 유형의 첩식 문서와 구별되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홍무예제(洪武禮制)』
  • 송철호, 『조선시대 帖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8.
  • 최승희, 『(증보판)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1989.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