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전(豐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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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복강현(福岡縣) 동쪽 지역과 대분현(大分縣) 북쪽 지역을 일컫던 옛 지명.

명칭 유래

원래는 풍국(豊國)으로 불렸는데 7세기 말 풍전과 풍후(豊後)로 나뉘어져 각각 국(國)이 되었다.

형성 및 변천

일본의 고대~중세기의 행정구획인 5기7도(五畿七道) 중서해도에 있었던 11개 국(國) 가운데 하나이다. 국은 내랑(奈郞)시대부터 명치(明治)시대 초기까지 일본의 지리 구분의 기본단위였다. 겸창(鎌倉)시대에는 무등씨(武藤氏)·금택씨(金澤氏)·북조씨(北條氏)가 실정(室町)시대에는 대내씨(大內氏)가 군사와 민정을 감독하는 직책인 수호(守護)가 되었고, 이후 대내씨의 영지가 되었다.

한편, 조선초 조선 정부는 왜구에 대한 문제를 교린(交隣)의 차원에서 처리하였다. 특히 일본과의 교린 관계는 당시 일본의 실세였던 실정막부 정권에 한정된 것이 아닌 구주의 대내씨, 소이전(小貳殿), 대마도주(對馬島主) 등과도 교류하는 등 다원적으로 이루어졌다. 조선 정부는 그들에게 조공을 허락하여 경제적 대가를 주는 한편 왜구의 단절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그리고 왜구 금지 요청을 목적으로 일본에 사자를 파견하기도 하였다. 1424년(세종 6)에 일본국에 다녀온 회례사(回禮使)박안신(朴安臣)과 이예(李藝)가 일본의 실정을 보고한 내용 가운데 풍전국이 나온다. 당시 박안신과 이예는 왕의 회답서와 함께 대장경과 불경을 가져갔는데, 이때 풍전 태수(太守) 등이 은사(恩賜)를 사례하고 예물을 바쳤다는 내용이다(『세종실록』 6년 12월 17일). 풍전국은 강호(江戸)시대에는 소창번(小倉藩)·중진번(中津藩)·소창신전번(小倉新田藩)으로 분할되었다. 1871년 명치(明治) 신정부에서 번을 폐지하고, 지방통치기관을 중앙정부가 통제하는 부(府)와 현(縣)으로 일원화한 폐번치현(廢藩置縣)을 시행하면서 3개의 번은 각각 현이 되었고, 후에 소창현으로 통합되었다. 1876년에 남쪽 지역은 대분현에, 북쪽 지역은 복강현에 편입되었다.

위치 비정

구주(九州) 북동쪽에 위치하며, 서쪽은 축전국(筑前國: 현 복강현(福岡縣)), 남쪽은 풍후국(豊後國: 현 대분현(大分縣))에 접하고 있다. 이 풍전·축전·풍후 3국의 경계에 해발 1,200m의 영언산(英彦山)이 우뚝 솟아 있으며, 동쪽은 주방탄(周防灘)을 사이에 두고 장문국(長門國)과 주방국(周防國)과 접하고 있었다.

참고문헌

  • 三宅英利 著·손승철 譯, 『근세한일관계사연구』, 이론과실천, 1991.
  • 이명훈, 『이예의 사명-나는 조선의 통신사로소이다-』, 새로운사람들, 2005.
  • 한일관계사학회, 『한국과 일본, 왜곡과 컴플렉스의 역사 2』, 자작나무, 1998.
  • 『日本大百科全書』, 小學館, 1987.
  • 國史大辭典編集委員會, 『國史大辭典』, 吉川弘文館, 1999.
  • 吉田茂樹, 『日本地名大事典』, 新人物往來社, 2004.
  • 三省堂編修所, 『日本地名事典』, 三省堂, 2007.
  • 平凡社地方資料センタ,『日本歷史地名大系』, 平凡社,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