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월정(風月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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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집 안에 있던 정자.

개설

풍월정(風月亭)은 세조의 손자이자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月山大君)이 집 서쪽 동산에 세운 정자이다. 월산대군은 이곳에서 풍류를 즐겼다. 성종이 이곳에 행차하였다가 이름을 하사하여 현액하였다. 처음에는 영응대군(永膺大君)의 집이었는데 월산대군의 소유가 되었고, 그 후에 정명공주(貞明公主)의 집이 되었다가 안동별궁(安洞別宮)이 되었다.

위치 및 용도

풍월정은 안동별궁 내에 위치하였다. 현재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안국동에 속한다. 월산대군은 성품이 온화하고 침착하며 시, 술 그리고 산수를 즐겼는데, 주로 격률(格律)이 높은 시를 짓는 글재주가 빼어났다. 왕과 문신들이 내방하여 시문(詩文)을 즐겼다.

변천 및 현황

풍월정이 위치했던 안동별궁은 1881년(고종 18)에 지어졌는데, 안국방(安國坊)의 소안동(小安洞)에 있다 하여 안궁방 별궁이라고도 불렸다. 안동별궁은 조선의 마지막 왕인 순종이 가례를 올린 곳으로 이전부터 역대 왕실의 저택이 있었다. 세종 때 왕이 영응대군(永膺大君) 집으로 크게 지었다.

1471년(성종 2)에는 연경궁(延慶宮)으로 불렸으며, 1477년경에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제택(第宅)이 되었고 그 집안에 풍월정을 건립하였다. 성종이 직접 그 정자 이름 ‘풍월(風月)’을 지어 주었다(『성종실록』 8년 8월 8일). 후에 선조의 계비 인목왕후(仁穆王后) 소생 정명공주(貞明公主)의 소유가 되었다가 안동별궁이 되었다. 현재 풍월정은 소실되었다.

관련사건 및 일화

1784년(정조 8)에 정조는 월산대군의 사당을 지나는 길에 봉사손(奉祀孫) 이헌규(李憲圭)를 만나 벼슬을 내리고 대군의 묘에 치제(致祭)를 명하였다. 아울러 월산대군이 살던 집이 팔리고 풍월정이라는 편액만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성종과 월산대군의 깊었던 우애를 생각하여 대군의 집과 풍월정을 찾아 호조(戶曹)에서 값을 치르고 자손들에게 돌려주도록 하였다(『정조실록』 8년 8월 21일).

참고문헌

  • 『국조상훈록(國朝相勳錄)』
  • 『대동야승(大東野乘)』
  • 『선원계보(璿源系譜)』
  • 『속동문선(續東文選)』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한경지략(漢京識略)』
  • 백남신, 『서울대관』, 정치신문사, 1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