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기군(豊基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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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지역을 중심으로 편성되었던 조선시대의 관청이자 행정구역.

개설

풍기군(豐基郡)은 기주(基州: 현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와 은풍현(殷豐縣: 현 경상북도 예천군 은산면) 두 고을에서 기원한다. 기주는 고려시대부터 연혁이 본격적으로 확인된다. 은풍현은 원래 적아현(赤牙縣)으로 불리다가 신라 경덕왕 때 은정현(殷正縣)이 되어 예천군(醴泉郡)의 영현(領縣)이 되었으며, 고려초기부터 은풍현이라 불렸다. 고려시대에 기주와 은풍현은 모두 안동부(安東府)에 소속되었다. 기주에는 1172년(고려 명종 2)에 감무(監務)가 파견되었으며 이후에 폐지되었다. 고려말기인 1390년(고려 공양왕 2)에 감무가 다시 파견되었으며, 은풍이 합병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413년(태종 13)에 기주는 기천현(基川縣)으로 개명하고, 감무는 현감(縣監)으로 개칭되었다. 1450년(문종 즉위)에 기천현은 풍기군으로 승격하였다. 1457년(세조 3)에 순흥부(順興府)가 폐지되어 풍기군에 병합되었다가, 1683년(숙종 9)에 다시 순흥부가 분리되었다. 풍기군은 1914년에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영주군에 통합되어 없어졌다. 조선시대 풍기군의 중심지는 현재의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지역에 위치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풍기군은 기주와 은풍현에서 기원한다. 기주는 원래 기목진(基木鎭)으로 불렸다고 하나 신라시대부터인지는 명확하지 않고, 고려시대부터 그 연혁이 본격적으로 확인된다. 은풍현은 신라의 적아현이었으며, 신라 경덕왕 때 은정현이 되고 고려초기부터 은풍현이라고 불렀다. 기주와 은풍현은 모두 1018년(현종 9)에 안동부에 소속되었다. 기주에는 1172년에 감무를 설치하였으나, 이후 감무를 폐지하고 안동부에 환속시켰다. 1390년에 기주에 감무를 다시 설치하고 은풍현을 소속시켰다. 조선 건국 이후인 1413년에는 기천현으로 개명하였다. 1450년(문종 즉위년)에 문종이 즉위하자 문종의 태(胎)를 은풍 지역에 안치하였기에 기천현을 풍기군으로 개명하고 승격시켰다(『문종실록』 즉위년 7월 26일). 개명 후에도 풍기군의 관아는 여전히 기주 지역에 위치하였다.

조직 및 역할

풍기군은 고려시대의 기주와 은풍현에서 기원하였다. 신라시대의 기주는 연혁이 알려져 있지 않다. 은풍현은 신라 경덕왕 때 9주 중 상주(尙州) 경내 예천군의 영현인 은정현으로 편성되었다. 당시 은정현에는 지방관으로 소수(少守) 혹은 현령(縣令)이 파견되었다. 고려초기에 은정현은 은풍현으로 개명되었다. 고려시대의 기주에는 한때 감무가 파견되었지만, 기주와 은풍현 모두 대부분의 기간 동안 안동부 소속의 고을로 편성되었다. 고려시대에 기주와 은풍현에는 별도의 읍사(邑司)가 설치되어 토착의 향리(鄕吏)들이 자치적으로 지방 행정업무를 수행하였다. 고려말기인 1390년(고려 공양왕 2)이 되어서야 기주에 감무가 파견되어 안동부로부터 독립하였고 은풍현이 기주에 소속되었다. 즉 두 고을이 통합된 것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서서 1413년에 기주는 기천현이 되고 감무는 현감으로 개칭되었다. 1450년에는 기천현을 풍기군으로 개명하고 승격하였다. 조선시대에 풍기군에는 군수가 파견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고려시대와 달리 향리의 권한과 지위는 약화되고, 풍기군수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종4품의 군수와 종9품의 훈도(訓導)가 파견되었다. 18세기에 편찬된 지리서인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4품의 문관(文官)이 군수로 임명되며, 좌수(座首) 1명, 별감(別監) 2명, 군관(軍官) 5명, 인리(人吏) 19명, 지인(知印) 10명, 사령(使令) 10명, 관노(官奴) 11명, 관비(官婢) 12명이 편성되었다. 『대전회통(大典會通)』에도 종4품의 군수가 임명된다는 내용이 있다. 조선시대 풍기군의 관아는 현재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성내리 일대에 위치하였다.

변천

1450년에 풍기군이 성립한 이래 풍기군 자체의 연혁 변동은 그다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1457년(세조 3)에 순흥부를 폐지할 때에 순흥을 풍기에 병합시키고 순흥 영역 중 상당 부분을 풍기군에 이속시켰다. 하지만 1683년(숙종 9)에 순흥부를 복구할 때 풍기군에 이속되었던 옛 순흥 영역은 다시 순흥부에 소속되었다. 1895년(고종 32)에 전국을 23부로 나누었을 때 풍기군은 안동부의 관할에 속했다. 1896년(고종 33)에 13도제가 실시되면서 풍기군은 경상북도 관할의 4등군으로 편제되었다. 풍기군은 1914년에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영주군에 병합되면서 없어졌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 『대동지지(大東地志)』
  • 『신구대조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新舊對照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