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작간(鮑作干)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어포나 해산물을 진상하는 신역을 담당한 사람.

개설

바다에 들어가 조개·미역 따위 해산물을 채취하거나 여러 국가제사에 쓰는 어포(魚鮑)를 떠서 소금에 말려 진상하는 신역(身役)을 담당한 사람이었다. 이들이 사용하는 포작선(鮑作船)은 가볍고 빨라 전선(戰船)으로도 이용하였다. 그들은 선박 운행에 능숙하였기 때문에, 사공의 일을 돕는 격군(格軍)으로 동원되기도 하였다.

담당 직무

조선초기 연해나 제주에는 해변에 장막을 치고 일정한 거처 없이 배에서 살면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일을 업으로 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배의 조작과 물질에 능숙하여 국가에서 진상하는 해산물은 모두 이들이 채취한 것이었다. 이들은 어업이나 해산물 채취를 주업으로 삼았고, 때로 해적으로 돌변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폐단을 막기 위하여 조선 성종 연간에는 이들에게 포작간의 역을 부과하고, 해물을 채취하여 진상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이 기록된 지역을 함부로 이탈하지 못하게 하였고, 해당 지역 관리로 하여금 관리하게 하였다.

변천

포작간에 대한 지방관, 특히 변장(邊將)의 침탈이 심하였다. 이 때문에 역을 피해 도망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특히 임진왜란을 전후로 해 일본으로 도망치는 이들이 많았다. 이 때문에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에 투항한 포작간들이 우리나라를 침범하는 안내자가 될 것을 걱정하기도 하였다.

한편 임진왜란 당시에는 포작간이 전선(戰船)을 운행하는 주력군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포작간은 그 역이 고되기 때문에 징집을 피하여 도망치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하여 바다를 통행할 수 있는 문첩(文帖)을 발급해 주고, 이를 소지하지 않은 포작간은 바다의 통행을 금지하는 정책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는 이들이 수군의 운영비를 담당하였다.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