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덕문(布德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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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궁의 동쪽 궁장에 설치된 궁문.

개설

포덕문(布德門)은 경운궁인 덕수궁 동쪽 궁장에 단칸 규모로 설치된 궁문이다. 경운궁에는 동남쪽 모서리에 정문인 대안문(大安門)이 있으며, 대안문 안 동북쪽으로 궐내 각사가 펼쳐졌다. 포덕문은 궐내 각사로 통하는 궁장의 문으로 관청에 오가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했다. 일제강점기에 태평로를 확장할 때 덕수궁 동편 궁장이 서쪽으로 후퇴하는 과정에서 포덕문이 이건되었으나, 이후에 사라져서 현재는 볼 수 없다.

변천 및 현황

『승정원일기』 1896년(고종 33) 8월 7일에 대유재(大酉齋)와 포덕문, 평성문(平成門)의 현판서사관(懸板書寫官)이 임명되었다는 기록을 통해 이때 포덕문이 건립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1912년에 태평로를 확장하고 직선화하면서 본래 위치에서 서쪽으로 이건되었다. 이로써 대한문(大漢門) 북쪽으로 궁내부(宮內府) 건물을 감싸고 일직선으로 연장된 궁장의 중간부에 위치하게 되었다. 이때의 모습을 1919년의 고종 장례 행렬을 사진으로 담은 『덕수궁국장화첩(德壽宮國葬畵帖)』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종의 재궁을 모신 대여 행렬이 대한문을 나서서 태평로를 지나는 행렬의 모습과 함께 포덕문의 모습이 사진에 담겨 있다.

포덕문이 언제 철거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왕궁사(王宮史)』에 수록된 1938년의 「덕수궁지도(德壽宮地圖)」에는 포덕문이 기록되지 않았다. 1961년에 덕수궁 돌담을 해체하고 안쪽이 보이도록 철재 담장을 둘렀는데, 이때 포덕문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형태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작은 궁문이다.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궁장의 높이보다 높이 솟아 문의 위치를 나타낸다.

관련사건 및 일화

1899년(고종 36)에 황의수(黃義秀)라는 사람이 포덕문을 통해 바로 함녕전(咸寧殿)으로 올라가 장차 서교(西敎)를 널리 포교하여 천자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바로 체포된 일이 있었다. 황의수는 형률(刑律)에 따라 교형(絞刑)에 처해졌다(『고종실록』 36년 7월 1일).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덕수궁국장화첩(德壽宮國葬畵帖)』
  • 문화재청, 『덕수궁 복원정비 기본계획』, 문화재청, 2005.
  • 이철원, 『왕궁사(王宮史)』, 동국문화사, 1954.
      1. 그림1_00018028_포덕문의 모습, 『덕수궁국장화첩』(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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