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해군(平海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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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평해 지방을 다스리던 관아. 조선시대 평해 지방을 통치하던 관청 및 행정기구.

개설

고려초기에 평해(平海)는 속현(屬縣)으로 존속되었으며, 중기에 주현(州縣)으로 승격되어 이 지방을 관장하였다. 고려후기에 도제(道制)가 빈번히 개편되는 가운데 평해는 군(郡)으로 유지되었고, 조선시대에도 여전히 군의 지위를 유지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고구려에서는 근을어현(斤乙於縣)이었고, 신라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유인군(有隣郡)의 영현으로 귀속되었다.

고려 995년(고려 성종 14) 10도제에서 기성현(箕城縣)으로 삭방도(朔方道)에 속하였으며, 1018년(고려 현종 9)에 예주(禮州)의 영현으로 삼았다. 1172년(고려 명종 2)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고려의 5도양계 체제에서 동계(東界)에 속하였고, 안변도호부(安邊都護府)의 관할이 되었다. 1178년(고려 명종 8)에 연해명주도(沿海溟州道), 1263년(고려 원종 4)에 강릉도(江陵道)에 속하였고, 충렬왕 때 이 고을 사람인 황서(黃瑞)가 왕을 따라 원나라에 들어가 호종(扈從)한 공로를 인정받아 군(郡)으로 승격되었다. 다만 평해라는 명호를 언제부터 사용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1388년(고려 우왕 14)에 교주강릉도(交州江陵道), 1391년(고려 공양왕 3)에 강릉도에 속하였다.

조선시대에서 평해군(平海郡)으로 편제되었고, 1395년(태조 4)에 강원도에 속하였다. 1455년(세조 1)에 군익도(軍翼道) 체제에 따라 강릉도를 설치하고 강릉은 중익(中翼)으로, 삼척·울진·평해는 우익(右翼)으로 편제하였다(『세조실록』 1년 9월 11일). 1457년(세조 3)에 군익도 즉 3익(三翼) 체제를 폐지하고 거진(巨鎭)을 설치하는 진관(鎭管) 체제에서 삼척진(三陟鎭)이 설치되어 울진·평해 등을 관장하였다(『세조실록』 3년 10월 20일).

조직 및 역할

조선초기에 군수(郡守)와 훈도(訓導) 각 1인을 두었다. 군수는 무반(武班)으로 종4품의 자리였다. 군수 예하의 자문기구 성격을 띤 향청(鄕廳)에는 좌수(座首) 1인과 별감(別監) 2인을 두었다. 6방(六房) 관속으로는 군관(軍官) 35인, 아전(衙前) 67인, 지인(知印) 27인을 두었다. 그리고 사령(使令) 25명, 관노(官奴) 11명, 관비(官婢) 7명을 두었다.

변천

조선시대에는 평해 부근 해안에 수군만호(水軍萬戶)가 주둔하는 월송진(越松鎭)이 있었고, 이곳에 성곽이 있었다. 1895년(고종 32)에 8도제를 폐지하고 23부제를 시행하면서 평해군은 강릉부에 속하였고, 이듬해인 1896년(고종 33)에 23부제를 폐지하고 13도제를 시행하면서 강원도에 속하였다. 1914년에 평해 지방은 울진군에 병합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강원도, 『강원도사』11, 강원도사 편찬위원회,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