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현(平澤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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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평택시에 설치된 조선시대 지방 관청이자 행정구역 명칭.

개설

평택현(平澤縣)은 조선시대 충청도 홍주목에 속한 현이다. 천안부의 속현이었으며, 1413년(태종 13)에 현감(縣監)을 두었다. 15세기에 호수가 179호, 인구가 704명이었다. 군정은 시위군(侍衛軍) 8명, 진군(鎭軍) 3명, 선군(船軍) 78명이었다. 토지는 2,234결인데, 이 가운데 논이 60%가 조금 넘었다. 화천역이 있었다. 1895년(고종 32)에 군으로 승격하였고, 1914년에 경기도 진위군에 병합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평택현은 삼국시대에는 고하현(古河縣)이라고 불렸다. 고려초에 평택으로 고쳐서 천안부의 속현으로 삼았다. 고려시대에 감무(監務)를 설치하였고, 1413년에 현감으로 고쳤다. 조선시대 내내 작은 현이었고, 농업생산력도 낮아 주민들이 다방면으로 생계를 모색해야 했으므로 풍속이 다른 지역과 많이 달랐다.

조직 및 역할

수령은 종6품 현감이다. 조선후기에는 음서 출신자를 주로 임명하는 곳이었다. 좌수 1명, 별감 2명, 군관 30명, 아전 18명, 지인 16명, 사령 21명, 관노 23명, 관비 26명이 속해 있었다.

변천

1505년(연산군 11)에 평택현을 경기로 이속하였으나(『연산군일기』 11년 6월 29일), 중종이 즉위하면서 충청도에 환속하였다(『중종실록』 1년 9월 5일). 1596년(선조 29)에 임진왜란으로 현이 극심한 피해를 입어 직산에 예속시켰다가, 1610년(광해군 2)에 복구하였다. 18세기에는 6개 면으로 구성되었다. 1759년(영조 35)의 기묘장적(己卯帳籍)에 의하면 호수는 1,395호, 인구는 남자 2,838명, 여자는 2,883명이었다. 토지는 밭 639결, 논 1,140결이었다. 1895년에 군으로 개칭하였다가, 1914년에 경기도 진위군에 병합되었다.

참고문헌

  • 『대전회통(大典會通)』
  • 『대동지지(大東地志)』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진위군읍지(振威郡邑志)』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