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신고(彭信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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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에 참전했던 명의 무장.

개설

호남성(湖南省)의 도주(道州)에 수어(守禦)로 부임하였다가 경주(瓊州)의 유격(遊擊)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승진하여 조선에 참전하였고 일본군과의 군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1598년 정유재란 당시 어왜총병관(禦倭總兵官)동일원(董一元)을 따라 보병을 이끄는 유격으로 진주를 공략하여 승리를 거두었고 이어서 사천의 도진의홍(島津義弘)이 주둔한 요새인 신채(新寨)를 공략하는 데 선두에 섰다. 그러나 그의 진중에서 큰 폭발이 일어나 명군은 큰 손실을 입고 신채의 공략은 실패하게 되었다.

가계

팽신고의 형은 호고(好古)이고 동생은 준고(遵古)이다. 세 사람은 모두 문무에 뛰어났는데 그중 호고와 존고는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이후 호고는 지현(知縣), 어사(禦使), 첨사(僉事)를 지냈으며 준고는 교수(教授)를 역임하고 광록소경(光祿少卿)에 올랐다.

활동 사항

정유재란 당시 팽신고가 소속된 동일원의 중군(中軍)은 진주를 공략하여 일본군의 본영까지 함락시켰다. 동일원은 승기를 타고 보병과 기병을 나누어 사천의 신채를 공략했다. 당시 팽신고는 보병 유격으로서 큰 몽둥이를 휘두르며 일본군의 요새를 공격하여 큰 타격을 입히는 등의 활약을 하였다. 그러나 팽신고 등이 신채에 접근하여 난간들을 불태우며 접근하려는데 갑자기 그의 진중에서 큰 폭발이 일어나 화염이 충천하자 일본군이 기회를 틈타 공격해 왔다. 때마침 적의 원군까지 이르자 명의 기마병이 먼저 도망하였고 동일원 역시 보병을 따라서 도망할 수밖에 없었다(『선조실록』 31년 10월 17일). 만력제는 기마병을 이끌던 마정문(馬呈文), 학삼빙(郝三聘)을 참수하고 팽신고의 관직을 강등했다.

참고문헌

  • 『국각(國榷)』
  • 『명사(明史)』
  • 『재조번방지(再造藩邦志)』
  • 『호광통지(湖廣通志)』
  • 한명기, 『임진왜란과 한중관계』, 역사비평사, 1999.
  • 吳如蒿, 『中華軍事人物大辭典』, 新華出版社,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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