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진법(八陣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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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촉(蜀)나라의 제갈량(諸葛亮)이 창안하였다는 고대 진법.

개설

팔진(八陣)이란 중국 고대의 인물인 풍후(風后)가 지은 『악기경(握奇經)』에서 기인한 진법으로, 제갈량이 이를 바탕으로 전투 대형으로 여덟 가지 진법을 완성하였다. 팔진법은 이후 당나라 시대 이정(李靖)이 고안한 육화진(六花陣)에 영향을 주었고, 이정의 『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 등을 통해 우리나라에도 도입되어 조선시대 다양한 진법을 개발하는 데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여 주었다.

내용 및 특징

풍후의 『악기경』에는 천진(天陣), 지진(地陣), 풍진(風陣), 운진(雲陣)의 네 진을 정진(正陣)이라고 하고, 호익진(虎翼陣), 사반진(蛇蟠陣), 비룡진(飛龍陣), 조상진(鳥翔陣)의 네 진을 기진(奇陣)이라 하였다. 이러한 네 정진과 기진을 팔진이라 하였다. 이 팔진을 바탕으로 제갈량은 돌을 가로와 세로로 늘어놓아 팔행(八行)의 방진(方陣)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팔진법으로 이는 황제(黃帝)의 구진도(九陣圖)와 같았다고 한다. 팔진법은 대진(大陣)이 소진(小陣)을 포함하고, 대영(大營)이 소영(小營)을 포함하며, 사방의 전면과 모서리가 연속으로 이어지고, 굽은 부분과 교차하는 부분이 서로 대칭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띠고 있다. 따라서 겉으로는 단순한 사각형의 방진으로 보이지만 그 내부는 대단히 복잡하고 유연한 형태의 진형을 유지하여 적들이 공격하여도 그 진을 격파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변천

이 팔진법을 기초로 하여 당나라 태종의 신하인 이정은 육화진을 창안하였는데, 이는 외부의 여섯 부대는 방진이 되고, 내부의 한 부대는 원진(圓陣)이 되도록 한 것이었다. 그 모양이 마치 여섯 개의 꽃잎과 같다 하여 사람들이 육화진으로 불렀다. 그러나 팔진법의 원리는 이후 중국의 병학에서는 제대로 계승되지 않았으나, 조선에서는 오행진법에 바탕을 둔 새로운 진법 개발에 팔진법과 육화진의 원리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자 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새로 도입된 방진 중심의 절강병법(浙江兵法)이 조선에 도입되면서 팔진법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으나 병자호란 이후 절강병법의 한계가 확인되면서 조선초기의 『진법』의 가치가 재확인되었다. 이에 팔진법 등 고전적 진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현종대 『연기신편(演機新編)』의 편찬과 함께 『병학지남(兵學指南)』, 『병학통(兵學通)』 등 조선후기 병서에 팔진법이 수록되고 구체적으로 훈련된 것을 보면 이러한 양상을 잘 보여준다.

의의

중국의 팔진법은 조선 초기 진법 개발 시에 연진법(連陣法) 등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병자호란의 패배 이후 절강병법과 다른 진법의 개발에도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다. 영조대 이후 나타나는 현무진(玄武陣) 등 새로운 진법의 개발은 팔진법 등 중국 고전 진법에 대한 연구의 결과이다. 아울러 조선후기 병서에 팔진법이 수록되고 군사들에게 훈련된 것으로 보아 팔진법은 조선후기 병학사에 있어 중요한 주제라고 할 것이다.

참고문헌

  • 『진법(陣法)』
  • 『연기신편(演機新編)』
  • 『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
  • 『병학지남연의(兵學指南演義)』
  • 『병학통(兵學通)』
  • 백기인, 『中國軍事思想史』, 국방군사연구소, 1996.
  • 노영구, 「조선후기 병서와 전법의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