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기(八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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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에서 실시한 씨족제에 입각한 군사·행정제도.

개설

중국청나라 때의 병제(兵制)이다. 팔기는 청나라를 건국한 누르하치[奴爾哈赤]가 창업에 공로가 있는 만주족을 비롯해 한인(漢人), 몽고인(蒙古人), 여진인(女眞人) 등을 중앙집권적으로 통제하고자 1616년에 조직한 군대이다. 군기(軍旗)의 빛깔에 따라 여덟 부대로 나누어 편제하였기 때문에 팔기라 하였다. 여덟 부대는 정황기(正黃旗)·정백기(正白旗)·정홍기(正紅旗)·정람기(正藍旗)·양황기(鑲黃旗)·양백기(鑲白旗)·양홍기(鑲紅旗)·양람기(鑲藍旗)이며, 만군(滿軍)·몽고군(蒙古軍)·한군(漢軍)에도 각 여덟 부대씩을 두어 총 24기로 조직되었다. 조선은 청으로부터 온 정보를 통해 이들의 구성이나 활동에 대해 알게 되었다(『인조실록』 21년 8월 16일) (『인조실록』 22년 9월 6일). 조선 사신은 황제가 개최한 행사에 동원된 팔기 병사들의 모습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정조실록』 9년 2월 14일).

설립 경위 및 목적

누르하치 시대 팔기제도가 성립된 것은 상호 간에 어떠한 결합 관계도 없는 복수의 부족집단을 통합, 관할하기 위해 새로운 조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조직 및 역할

팔기제는 상삼기(上三旗)인 정황(正黃)·정백(正白)·정홍(正紅)기와 하오기(下五旗)인 양황(鑲黃)·양백(鑲白)·양홍(鑲紅)·정람(正藍)·양람(鑲藍)기로 나뉜다. 청은 만주족에 대해 그들의 부족 조직을 기반으로 하는 8개의 기(旗)를 통해 지배했으며 일반 한족을 대상으로 한 지방 행정조직의 틀 바깥에 두었다. 팔기제도는 몽고인과 한인 일부에게도 적용되어 각기 몽골팔기(蒙古八旗)·한인팔기(漢軍八旗)라고 불렸는데 이와 같이 만주족을 포함해 팔기에 속한 자를 기인(旗人)이라 불렀다. 기인에게는 기지(旗地)라고 불리는 토지를 지급해 생활을 보장해주는 것이 원칙이었다.

변천

팔기제도는 화살이라는 의미의 니루([牛彔], niru)를 기본단위로 하였는데, 이 니루는 만주족의 수렵 관행에서 발전한 일종의 씨족조직과 관련된 것이었다. 초기의 1니루는 혈연적 성격을 지닌 10인으로 구성되었으나, 만주사회의 확대와 더불어 지연적인 성격을 지닌 300인을 단위로 한 행정적이며 군사적인 조직으로 변화되었다. 이에 따라 300인으로 구성된 1니루에 1명의 니루어전([牛彔額眞], niru i ejen)을 두고, 5니루에 1명의 잘란어전([甲喇額眞], jalan i ejen)을, 5잘란에 1명의 구사어전([固山額眞], gūsa i ejen)을 설치하여 1구사([旗], gūsa)를 조직하였다. 1607년에는 홍(洪), 황(黃), 남(藍), 백(白)의 4기가 성립하였고 1616년에 이르러 양홍(鑲紅), 양람(鑲藍), 양황(鑲黃), 양백(鑲白)의 4기가 첨가되어 팔기가 성립하였다. 1642년에는 본래 있었던 만주팔기에 몽골팔기와 한군팔기가 더해져 도합 24개의 기가 되어 완전한 팔기제가 구성되었다.

참고문헌

  • 동양사학회 편, 『개관동양사』, 지식산업사, 1983.
  • 마크 C. 엘리엇 저, 이훈·김선민 옮김, 『만주족의 청제국』, 푸른역사, 2009.
  • 부락성 저, 신승하 옮김, 『중국통사』, 우종사, 1981.
  • 이시바시 다카오 저, 홍성구 옮김, 『대청제국』, 휴머니스트, 2009.
  • 김두현, 「청조정권의 성립과 발전」, 『강좌중국사』Ⅳ, 지식산업사,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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